최근 부산광역시(시장: 박형준)는 ‘새로운 도전 15분 도시’라는 표어 아래 부산지역의 ‘15분 도시의 구축’을 야심차게 발표하고 그 추진을 언론을 통해 알리고 있다.
부산광역시 ‘15분 도시’ 홍보 내용에 따르면 생활, 일, 상업, 의료, 교육, 여가 등 6가지 필수 기능을 ‘15분 보행 생활권’ 내에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의미한다. 이웃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공유공간을 확충․활성화함으로써 커뮤니티를 회복하고, 열린 녹지공간과 자원재활용 등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지향한다.
사실 15분 도시(15-Minute City)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도시 계획 철학으로, 현대 도시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여러 도시 계획 및 지속 가능한 발전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21세기 들어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됨에 따라 환경 문제와 생활의 질 향상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15분 도시 개념의 뿌리는 도시 내 지역 분권과 이동성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도시들은 과밀, 교통 혼잡, 공해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초기 시도 중 하나로 Ebenezer Howard가 제안한 전원도시(Garden City) 개념에서 전원도시는 자족적인 소규모 도시를 설계하여 사람들이 직장과 생활 편의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후에 15분 도시 개념의 기초가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는 도시화로 인한 교통 문제와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Jane Jacobs와 같은 도시 계획가들이 '인간 중심의 도시'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Jacobs는 도심의 밀도를 높이면서도 사람들이 도보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살기 좋은 도시"를 주장했다. 이는 지역 사회의 활성화와 지역 내 이동성을 중시하는 ‘15분 도시’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15분 도시’라는 구체적인 용어와 개념은 2020년대에 들어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교수에 의해 정립되었다.
모레노는 프랑스 파리에서 이 개념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대도시의 교통 혼잡, 환경오염, 삶의 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내 모든 필수 서비스와 시설을 15분 내 도보 또는 자전거로 접근할 수 있도록 분산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하였던 파리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는 모레노의 ‘15분 도시’ 개념을 자신의 도시 정책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녀는 파리를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중심 도시로 전환하고, 시민들이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이달고 시장의 이러한 도시 계획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도시 생활의 변화된 필요성에도 부합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도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 환경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와 함께 자전거 도로의 확장, 지역 경제 활성화, 녹지 확대 등의 필요성도 대두되었는데, 이는 15분 도시 개념이 더 많은 도시에서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부산뿐만 아니라 제주도 등 우리나라 여러 지자체에서 15분 도시 개념의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 도시에서 시민으로, 또한 장애당사자의 한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몇 가지의 기우(杞憂)와 바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선, ‘15분 도시’ 개념에서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이동약자를 위한 도시 설계를 할 때는 여러 가지의 고려가 필요하다. 이동약자들은 이동성과 접근성에서 제약을 경험하기 때문에, 도시가 이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15분 도시"의 이점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무장애 설계(Barrier-Free Design)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무장애 설계는 이동약자가 자립적으로 이동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는 장애인, 노인, 유모차를 이용하는 부모 등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쉽게 이용 가능해야 한다. 휠체어, 보행기, 또는 기타 보조 장치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사로, 낮은 연석, 제대로 된 포장상태를 요구한다.
교차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 신호기, 시각적으로 뚜렷한 보도블록, 충분한 시간의 신호등 등이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보행자가 우선인 교차로 설계도 필수적인 사항으로 꼽힌다.
공공시설, 상점, 병원 등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넓은 출입구, 낮은 문턱, 엘리베이터, 장애인용 화장실 등 접근 가능한 건물 설계는 ‘15분 도시’개념 구현 이전에 현재 충족되어야 하는 사항임을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지역 사회 내 서비스 접근성 강화는 ‘15분 도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의료, 상업, 교육, 공원 등)가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내 접근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핵심이다.
이동약자에게는 이 서비스들이 물리적으로 가깝고 접근 가능하게 설계되는 것이다. 병원, 약국, 재활센터, 복지시설 등 중요한 의료 및 돌봄 서비스가 지역 내에 고루 배치되어야 하며, 이러한 시설들이 모두 무장애 시설이어야 할 것이다.
공원, 도서관, 커뮤니티 센터 등 이동약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공간의 접근성을 보장함으로서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여 이동약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도시의 서비스를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정보 접근성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 정보 시스템 등은 시각, 청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및 민간기관과 다중이용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의 디지털 접근성 준수와 확립은 매우 중요하다.
안전성 강화는 이동약자는 특히 사고와 범죄에 더 취약할 수 있다. 따라서 안전한 도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분야로, 어두운 환경에서 이동이 어렵거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거리와 공공장소에 충분한 조명이 필요할 것이다.
15분 내의 안전한 자전거와 도보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행자가 많은 도로와 골목은 안전한 교통 체계와 보행자 우선의 설계가 이루어져야 할것이며, 속도 제한, 보행자 전용 구역, 자전거 전용도로 등을 통해 자전거 이용시민과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안전한 보행 환경 구축을 위해서 주요 공공장소와 교통 거점에는 비상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비상 호출 시스템의 설치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이동약자를 위한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 구축은 15분 도시의 한 축은 지역 사회 기반의 지원이다. 이동약자는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원도 필수적으로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노인 등 이동약자들을 위한 자원봉사자, 돌봄 서비스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이동약자들의 쇼핑, 의료 방문, 사회적 활동 참여 등을 돕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이동약자가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제공되어, 지역에서 고립되기 쉬운 이동약자들이 지역 사회 내에서 함께 활동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욕구와 필요를 반영한 세심한 설계와 인프라 투자를 통해 15분 도시는 이동약자에게 더 큰 자율성과 이동성을 제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도시 개념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근거리에서의 생활 편의성, 무장애 환경, 향상된 대중교통 시스템은 장애인과 노인 등 다양한 이동약자들이 일상생활을 더욱 쉽게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기사원문-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 idxno=215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