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자립을 위한 작은 한걸음 소통

〔더인디고〕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열세 번째 이야기
작성일
|
2024.07.19
조회수
|
22
작성자
|
동료상담가
동료상담가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열세 번째 이야기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아령은 수민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요즈음에는 웬만한 차에 자율주행 기능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왠지 처음부터 내 손으로 운전해 보고 싶었다. 하기야 이런 말도 50년 전에는 불가능했다. 그 당시에는 자율주행 기능도 없었고, 등록자폐인들은 주의능력 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운전면허를 받기 전에 의사로부터 소견서를 받아야만 했다. 지금은 다르다. 수십 년간 쌓아온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해 자폐인들의 발달 상황 및 능력에 맞춰 운전을 도와주는 보조공학 기술이 2050년 개발되면서, 자폐인들은 자신의 차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렌터카, 공유형 차량에는 모두 장애보조공학 기술이 의무적으로 도입되었다. 물론 아령은 과거의 차에도 관심이 많아서, 수동 및 대형 운전자격 또한 따서 가지고 있다. 자폐를 이유로 운전면허증조차 갖지 못했던 때에 비하면 상전벽해인 셈이다.

자율주행 기술은 자폐인들의 이동권을 크게 진흥시켰다. 이제 자폐인들은 대중교통으로 가지 못하는 지역에 부모의 도움 없이, 또는 큰 고생 없이도 잘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운전하던 중에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 그분은 오시려나? 한 주 전인가, 상담을 요청해 왔던 사람이 있었다. 갑자기 사무실로 들어와서 자신이 자폐인이 맞냐고 대뜸 물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폐다운 삶의 걸음을 걸어왔던 것 같아서 역시 맞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래도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답변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다음 주에 기념식이 있는데 거기에서 자폐인들을 한 번 만나보라는 답변과 함께 기념식을 소개해 줬다. 관련해서 활용할 수 있는 유의한 판단 도구가 있기 때문에 행사에서 같이 자폐인들과 만나면서 빠르게 자폐다움 정도를 판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담자는 그럼 그때 오겠다고 답변했지만, 약간은 내키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이 1분 동안 이어졌는데, 다행히 그사이에 자동으로 운전이 자율주행으로 전환되었고, 차는 안전하게 신호등 앞에 멈춰 있었다. 다시 한번 아령은 자율주행 기술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운전대를 잡고 차에 말해 수동운전 모드로 되돌아갔다.

행사장에 도착했다. 세월이 흐르고 기술은 여전히 발전했지만 여전히 행사의 방식이나 내용은 바뀌지 않아서 행사를 준비하는 데 사람들의 손이 많이 필요했다. 다행히 부하 직원들도, 행사를 위해 고용한 직원들도 평소보다 일찍 나와 준비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연회장 준비도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고, 행사장의 프레젠테이션 및 행사 홀로그램 및 동영상 체크, 귀빈 방문 일정 체크, 아나운서와의 확인 등 여러 절차를 밟아 나갔다. 다행히 잘 지나가나 했는데, 동영상 일부에 잘못된 표기가 있었다. 어이구, 다림씨 놓치면 어떡해요. 라는 생각이 지나갔지만, 다행히 요즘에는 재랜더링 기술이 발전해 몇 분 만에 수정할 수 있었다. 수십 년 전에는 생각도 못 하던 일이다.

어느새 행사장 입구에 자폐인들과 신경다양인들, 그리고 부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사장 한편에 앉아 쉬는 사람, 한쪽에 마련된 다량의 콘센트에 자신의 충전기를 꽂는 사람 등 신경전형적인 MICE 분위기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몇몇 부모들, 이따금 오는 외빈들을 제외하면 이상해하거나, 제지하려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오늘이 우리의 날이라면, 이렇게 자폐답게 모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협회가 생겨나고부터 정착된 분위기였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국민의례와 묵념을 진행하고 나서 행사장이 조용해진 것도 잠깐, 다시 행사장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약간은 시끄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시끄러운 소리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행사장이 옆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행사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자폐답지 못한 신경전형인뿐이었다.

협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인사 말씀들이 지나간다. 그래도 올해는 보건복지부 장관님이 직접 나오셨고, 국회의원들도 앞다퉈 자리에 나와 자폐 국회의원이나 신경다양인 국회의원, 이외에는 당 대표급 분들에게만 말씀을 요청해야 할 정도였다. 나온 분마다 자폐인을 위한 새로운 정책안들을 제시하며 개선책들을 줄지어 발표했다. 이렇게 된 것에는 당연한 이유가 있다.

저출산을 넘어 초저출산 시기라는 사회적 재앙을 마주한 한국 사회가 자폐인의 잠재력과 창의력에 대해 드디어 주목하게 된 것이 2040년대 중반. 그제야 한 명의 자폐인이라도 더 사회에 포합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지적장애인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에 통합하는 것을 확인한 정부와 의회가 자폐 친화적인 정책을 잇달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폐인들에 대한 정부의 투자도, 정책도 해가 갈수록 늘어났고, 자폐인들도 뛰어난 성과로 보답했다. 결국 IQ와 GAS라는 수치로 자폐인을 잣대질하던 과거도 사라졌다. 이제 자폐인들은 한국 사회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주제도 “자폐다워진 50년,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50년 전에 각종 혐오 발언과 편견, 발달장애인 중심의 정책으로 인해 이중으로 고통받던 자폐인의 고통은 사라졌고, 그 대신 자폐인의 삶에 희망이 가득해졌다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기념식이 끝나갈 순서다. 어티스틱 권리선언문(’24년 제정)을 낭독할 순서가 되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자폐인들도, 내빈들도, 부모들도 일어난다.

“어티스틱 트레이츠를 지닌 우리 자폐인과 신경다양인들은 자폐인이 태어났을 때부터 국제인권법에 의해 부여받은, 신경전형인과 동등한 다음의 권리를 우리의 권리로 재확인한다.”

하나하나씩 항목을 읽어나가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령은 이 권리선언문을 읽을 때마다, 자폐가 병과 질환이 아니라, 장애이자 다양성이며, 동시에 자연적이라는 것을 다른 한국인들에게 굳이 확인시켜 줘야 했던 선진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의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행사를 시작하고 이어왔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 질문을 가슴에 새기며, 어느덧 긴 글을 읽어나갔다. 선언문의 끝, 두 단체의 이름 뒤에 협회의 이름을 넣어 같이 불러본다.

“사단법인 한국자폐신경다양인협회.”

행사가 끝나고 자폐다운 행사가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컨퍼런스가, 한쪽에서는 정신없는 토론회가, 또 다른 한쪽에서는 파티가 벌어졌고, 그 와중에 촬영과 기록이 이어졌다. 나중에 참가자들도, 국민들도 다 함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주에 오셨던 상담인도 마침 발견해 파티로 이끌어주면서 평가자를 한 명 붙였다.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행사장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다들 바빴지만 기뻐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뒤풀이 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행사장에 가득하던 자폐다운 모습이 다 사라지고, 행사장을 돌려줄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올해 행사는 50주년 행사라 더 크게 진행했는데도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자폐다운 사람들을 위한 심리상담 및 돌봄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합병 심리사회상태가 나타나는 정도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령은 뒤풀이 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팀원들을 데리고 지정된 호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호텔에서 묵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호텔 전체가 자폐다운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디에나 가득한 자폐인들의 모습을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 호텔 로비에서부터 자폐다움이 물씬 풍겨났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마침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보인다. 영국에서부터 온 자폐인들이다. 그들에게 영어로 인사하며 이야기하기 위해 달려갔다. 일본 친구도, 프랑스 친구도 다가와 대화에 참여하려는 마당이다. 오늘 밤은 잠자기에 글렀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57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