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자립을 위한 작은 한걸음 소통

〔더인디고〕-이동권 이야기-“기사님, 청각장애가 있는데 문자로 알려주세요”
작성일
|
2024.09.23
조회수
|
21
작성자
|
동료상담가
동료상담가

[이동권 이야기]“기사님, 청각장애가 있는데 문자로 알려주세요”

0
빠르게 달리는 택시 이미지
시청각장애가 있어서 기사님에게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기 어려우니까 시청각장애인만의 방법으로 대처한다. ©망고보드
  • 시청각장애인의 장애인콜택시 이용기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어디론가 이동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기자의 이동수단 옵션은 크게 세 가지다. 장애인콜택시, 나비콜, 지하철. 이 세 가지 옵션은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목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용 빈도가 가장 낮은 건 장애인콜택시다. 세 가지 옵션 중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접수를 해도 언제 배차될지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분명한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콜택시를 접수하고 배차가 되기까지, 배차된 후 목적지로 이동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다 감수하고서라도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도 될 정도로 ‘여유 있을 때’가 가끔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한다.

장애인콜택시는 전화로 접수해야 하는데, 기자는 시청각장애가 있어서 전화로 접수하기 어렵다. 그래서 활동지원사나 지인에게 출발지와 도착지를 알려주고 ‘대리 접수’를 부탁한다. 이런 경우 기자가 원하지 않아도 지금 기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려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려 줘야만 한다.

어쨌든 접수가 되면 15~20분마다 차량의 배차 여부가 기자의 핸드폰으로 문자 알림이 온다. 정말 하염없이 기다리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배차될 테니까 목적지에 가기까지 여유가 있다면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윽고 [OOO 기사의 OOO(차량번호) 차량의 OO동에서 출발했다]는 문자 알림이 왔다. 그 순간만큼은 기다리던 차량 배차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기쁨보다는 긴장감이 밀려온다. 배차되었다는 문자 알림이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OOO 기사가 기자에게 전화해서 몇 분 뒤에 출발지에 도착하는지 알려주기 위함이다.

곧 기사에게서 전화가 오면, 기자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손가락으로 핸드폰의 화면을 오른쪽으로 밀며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가능한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OOO 기사에게 말한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문자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사가 뭐라고 대답하는지 듣지도 않고(어차피 못 들으니까) 일방적으로 빨간색 바탕에 흰색 전화 모양이 있는 버튼을 터치해서 전화를 끊는다.

그럼 1~2분 내로 OOO 기사에게서 문자가 온다. 몇 분 뒤에 도착한다는 내용인데, 정말 친절한 기사님은 도착하면 문자 보내준다는 내용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 방법(기자가 전화를 받고 말한 뒤 일방적으로 끊는 방법)은 ‘장애인콜택시 기사’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고 나비콜을 이용할 때는 좀체 효과를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장애인콜택시 기사님들은 어느 정도 장애에 대한 이해와 장애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청각장애가 있다고 하면 바로 상황을 인지하고 문자를 보내준다. 하지만 나비콜 기사님들은 장애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한 경우도 있고, 또 기자의 경험상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있어서 장애에 대한 이해가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나비콜 기사님께는 이 방법을 사용해도, 기자가 전화를 끊은 뒤 또 전화가 걸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으로는 기자가 사용하는 이 방법은 정녕 최선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운전 중에 통화를 하는 것보다 문자를 보내는 게 훨씬 위험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서 당연히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또 가능한 ‘혼자’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

한때는 장애인콜택시 접수를 대리해 주는 지인에게 장애인콜택시 배차 여부를 문자로 받을 수 있게 한 적도 있다. 그럼 배차된 차량 번호와 기사 이름뿐만 아니라 기사님의 전화도 기자가 아닌 지인에게 가고, 지인이 전화를 받은 뒤 기자에게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알려주면 된다.

그런데 기자와 지인이 한 공간에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지인에게 고마움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게 된다. 지인은 본의 아니게 15~20분마다 오는 문자의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본인의 삶에 집중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인은 별 거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도움을 부탁한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기자가 생각해낸 이 방법을 통해 장애인콜택시가 도착하면 그때부터 세상 편안함을 느낀다. 장애인콜택시는 보통 택시와 다른 디자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기자가 잘못 알아볼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고, 차량에 탑승해서도 이미 도착지가 접수되어 있기 때문에 기사님과 따로 소통해야 할 필요도 없다. 차량 탑승 후 기사님에게 본인 확인을 위한 복지카드만 제시하면 그 다음부터 차량 뒷좌석에 깊이 몸을 묻고 기자가 좋아하는 꿈나라에 다녀오면 된다.

한편으로는 기사님의 전화를 받은 뒤 기자가 할 말만 한 뒤 일방적으로 끊어 버리는 방법보다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게 된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58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