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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특별기고-① 탈시설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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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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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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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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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① 탈시설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서울 종로 혜화동 성당 앞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175개의 거주기설 이름이 붙은 박스탑이 쌓여 있다. /사진=전장연 제공
▲서울 종로 혜화동 성당 앞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175개의 거주기설 이름이 붙은 박스탑이 쌓여 있다. /사진=전장연 제공
  • 천주교 혜화동 성당 점거 고공농성이 남긴 과제

[이정훈 에큐메니안 편집장]

한국에서 종교, 장애인 인권, 시설 복지가 얽히며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25년 5월 2일(금)까지 15일간 이어진 서울 혜화동 성당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의 고공농성이다. 이 점거 고공농성이 아니었더라도 장애인 탈시설 문제로 인해 종교계와 장애계의 충돌은 불가피한 지점이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가톨릭과 개신교로 통칭되는 그리스도교가 운영하는 장애인 거주 시설은 경기도 내로 한정하면 개신교측이 운영하는 시설은 374개, 천주교측이 운영하는 시설은 267개로 파악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탈시설을 주장하는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보기에 그리스도교계 장애인 거주 시설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시설이고, 특히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부정하는듯한 천주교의 입장은 불편할 수밖에 없고 항의의 대상이 된다.

장애인 거주 시설의 투명한 현황 공개

천주교와 개신교는 한국에서 상당수의 장애인 거주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규모와 운영에 대한 정확하고 투명한 자료는 부족하다. 2023년 기준으로 천주교는 약 175개, 개신교는 약 300개 이상의 시설을 운영하며, 이는 국내 전체 장애인 시설의 30-40%를 차지한다. 이들 시설은 정부 보조금, 기부금, 자체 수익(예: 시설 내 작업장 운영)으로 유지되며, 특히 중증 및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두 종교 기관은 주민 수, 재원, 직원 배치 비율, 생활 조건 등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투명성이 없으면 “복지 장사”나 기관 이익 우선이라는 비판이 계속될 것이다. 예를 들어, 시설 운영이 신부나 목사에게 집중되며 주민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다. 신뢰를 쌓고 탈시설 정책 논의를 위해 정확한 현황 공개가 필수적이다.

혜화동 성당 점거 투쟁활동가의 입장

2025년 4월 1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탈시설연대) 소속 세 명의 활동가가 혜화동 성당 종탑을 점거하며 15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는 2025년 2월 통과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인자립지원법)에 대한 천주교의 반대에 항의하는 행동이었다.

활동가들은 천주교가 법률 폐지 청원과 공개 성명을 통해 탈시설을 “시설 거주 권리 침해”로 왜곡하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권리를 부정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자율과 사회 통합 원칙,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1년 발언(“장애인은 시설에서 벗어나 사회에 완전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을 근거로 삼는다. 활동가들은 시설을 “통제와 억압”의 공간으로 보며, 설령 선의로 운영되더라도 주민의 자유와 선택을 제한하고 사회적 분리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종탑에 현수막을 걸고 문을 파손한 이번 농성은 탈시설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다. 박초현, 민푸름 등 활동가들은 물과 약품 반입 제한 등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천주교의 사과와 법률 수용을 요구했다. 그들은 이 투쟁을 도덕적·인권적 사명으로 규정하며, 천주교가 자비와 정의의 가르침을 배반한다고 비판했다.

천주교의 입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와 사회복지위원회는 장애인자립지원법 반대가 중증·다중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보호하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천주교는 전국 175개 시설을 운영하며, 이곳이 안전, 의료 지원, 공동체를 제공한다고 본다. 2025년 4월 30일 혜화동 성당 강연에서 이기수 신부는 탈시설로 인해 “700명 중 24명이 사망했다”고 언급하며 정책의 위험성을 강조했으나, 이 수치는 독립적 검증이 필요하다.

천주교는 활동가들의 성당 점거—특히 사순절 기간의 성물 훼손과 종탑 문 파손—를 무례하고 강압적인 행위로 간주한다. 이기수 신부는 전장연을 “인권 독재자”로 비판하며, 탈시설 운동이 장애인 예산을 노리는 조직의 이익 추구라고 주장했다. 천주교는 4월 25일 대화를 제안했으나, 농성 중단과 박경석 전장연 대표 배제를 조건으로 내걸며 결국 취소, 신뢰 붕괴를 드러냈다.

천주교는 지역사회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한국의 자립 지원 인프라—활동보조, 접근 가능한 주거 등—가 미흡해 탈시설이 주민의 안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일부 시설 주민 부모들의 지지를 받는다.

탈시설 이행 과정의 현실적 과제와 인프라 부족 문제

탈시설이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과 지역사회 통합을 실현하는 인권적 이상임은 분명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를 실행하는 데 따르는 현실적 과제는 간과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장애계와 종교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첫째, 접근 가능한 주거 환경의 부족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주거 보장 요구는 6.5%로 나타났으며, 이는 소득 보장(43.9%)나 의료 보장(26.9%)에 비해 낮지만 여전히 중요한 욕구다. 그러나 장애인이 추가적인 물리적 개조 없이 자립 생활이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이나 민간주택의 재고는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2023 장애인삶 패널조사’는 탈시설 장애인의 주거 환경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접근성(예: 엘리베이터, 경사로)이 부족해 자립을 저해한다고 보고한다. 이는 탈시설 장애인이 안정적이고 안전한 주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둘째, 개인별 필요에 맞는 활동지원 서비스의 불균형이다.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일상생활 지원 만족도는 62.3%로 2020년(54.9%) 대비 개선되었으나, 중증 장애인의 경우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2년 장애인 탈시설 정책 보고서는 특히 야간이나 주말 등 취약 시간대의 서비스 공백이 심각하며, 중증도가 높은 장애인에게 필수적인 24시간 근접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탈시설 장애인의 상당수가 필요한 활동지원 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해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천주교 등 시설 운영 주체가 탈시설 후 지원 부족을 우려하는 주요 근거로 작용한다.

셋째, 의료, 재활, 정신 건강, 고용 등 지역사회 기반 통합 서비스의 연계 부족이다.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는 장애인의 고용률이 37.2%로 전체 인구(63.3%)의 약 절반 수준이며, 탈시설 장애인의 고용률은 이보다 더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3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는 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이 35.4%, 고용률이 34.0%로 나타났으며, 지역사회 내 고용 지원 기관과의 연계 부족이 취업률 저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재활의료기관의 장애인 특화 서비스 이용률은 낮으며, 통합적 서비스 전달 체계가 미흡해 시설에서 제공되던 일괄적 지원을 대체하기 어렵다.

넷째, 탈시설 당사자와 가족, 지역사회 주민 간의 인식 격차와 갈등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2024년 전국 시·도별 장애인 복지·교육 비교 조사는 지역사회의 장애인 복지 인프라 부족과 인식 차이를 지적하며, 일부 지역에서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설립에 대한 주민 반대 민원이 발생한다고 보고한다. 국가인권위원회(2022)는 탈시설 주거 설립 시 지역 주민의 반발 사례를 언급하며,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회적 마찰은 탈시설 장애인과 가족에게 심리적·물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며,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인식 개선 노력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

이러한 현실적 과제와 인프라 부족은 천주교를 비롯한 시설 운영 주체와 일부 가족들이 탈시설 정책에 신중론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따라서 탈시설 논의는 시설 폐쇄의 시점을 넘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물리적, 제도적,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구체적 대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의 장애인 접근성을 확대하고, 활동지원 서비스의 시간과 질을 강화하며, 지역사회 통합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