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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안승준의 다름알기- 뷔페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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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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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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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상담가
동료상담가

[안승준의 다름알기] 뷔페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채 물감ⓒ픽사베이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채 물감ⓒ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누가 처음 알려준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어릴 적 뷔페에 갈 때엔 지켜야 할 수칙이 있었다.

1. 김밥이나 빵처럼 평소에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2. 회처럼 배가 부르지 않고 비싼 음식 위주로 먹는다.

   3. 최대한 오랫동안 배가 터지려고 할 때까지 먹는다.

책에서 보거나 정규교육 과정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다 기억할 수 없지만 대략 이런 식으로 주워들었던 내용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적용한 나의 뷔페 원칙은 항상 초밥과 회를 먼저 먹는 것이다. 초밥과 회를 좋아하는 것도 맞고 시각장애인이 먹기에 편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저절로 지키는 나만의 관습 같은 것이 되었다.

이것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가정교육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것은 내 또래 많은 친구가 뷔페에서 나와 비슷한 순서로 음식을 떠 나르는 경향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시간 입장하는 잔치의 뷔페에서는 대체로 초밥과 고급 갈비 같은 몇몇 음식 앞쪽에 집중적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나와 같은 뷔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취향이 모두 비슷할 리는 없는데 언제나 붐비는 쪽이 붐비고 김밥 앞의 줄은 한산한 것을 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뷔페에서는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옳다는 무의식적 교육을 공유한 것이 틀림없다.

얼마 전 방문한 뷔페에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접시는 모둠회, 초밥, 고급 갈비의 순으로 채워졌다. 우선순위로 그런 것들을 먹는다고는 했지만, 이런 것들을 실컷 먹다 보면 사실 대부분의 음식 선택은 생략되고 다음 순서는 바로 디저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엔 좀 다르게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밥과 갈비로 배가 채워지기 전에 쌀국수도 먹고 피자도 먹고 도라지 정과도 먹어보았다. 한두 조각씩 적은 양의 음식을 여러 가지 먹다 보니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고 예상했던 대로 너무 흔한 맛도 있었지만, 한 자리에서 다양한 것들을 먹는 재미가 있었다.

함께한 이들과 각자가 먹어본 음식의 맛을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꽤 괜찮았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뷔페를 온전히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지켜온 무의식적 교육에 의한다면 오늘 나의 식사는 경제적으로는 다소 손해였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뷔페를 방문한 이유가 오로지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음식의 맛을 보는 것도 즐겁게 이야기 나누면서 식사하는 것도 내가 뷔페에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값비싼 음식 위주로 배불리 먹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이득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음식이 나의 건강에 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근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뷔페 규칙은 내게 유리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식당 사장님께 조금이라도 더 손해를 주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아들의 돌잔치에서 돌잡이가 진행되었다. 다양한 잡을 거리가 했지만, 대부분 사람이 바라는 것은 판사봉과 청진기였다. 내가 어릴 적에 실, 엽전, 연필 세 가지의 도구로 하던 돌잡이에서는 분명 아기가 건강하고 풍요롭고, 똑똑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 정도를 담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된 아기에게 우리는 판사봉과 청진기를 쥐라고 하고 있다.

뷔페에서 초밥과 소갈비만 쫓는 사람들처럼 돌잡이에서부터 시작한 암묵적 강요는 아이들의 목표를 일단 의사와 판사로 규정한다. 인성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런 바람은 뷔페의 김밥이나 김치처럼 일단은 뒷전에 두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난 의사나 판사가 되지 못해서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훌륭하고 행복한지는 잘 모르지만,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이 누구에게나 그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도,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도, 건강하게 사는 것도 우리에게 추구해야 할 소중한 목표다. 이것은 뷔페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초밥과 갈비로 그득하게 채워진 배는 급하게 디저트로 마무리되느라 뷔페 안의 다른 즐거움들을 앗아가 버렸다. 죽을힘을 다해 공부하고 한두 가지의 목표 안에서 아이들이 경쟁하는 동안 그 녀석들도 세상 사는 많은 즐거움들을 놓치게 될지 모른다.

나의 아들 햇살이는 공부도 하고 공도 차고 실수도 하고 나누기도 하고 손해도 보고 그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돌잡이에서 판사봉을 잡았지만,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을 사는 이유가 너무나 많아서 한두 가지로 말하기 힘든 아이였으면 좋겠다.

몇 년 뒤 조금 더 큰 햇살이와 뷔페를 가게 된다면 비싼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방법보다 다양한 음식이 가진 각각의 매력을 다양하게 느낄 방법을 안내해 주고 싶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4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