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지난 주 토요일 겸사겸사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여성장애인연대 독서모임에서 기자가 쓴 책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의 작가로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북토크에 가기 며칠 전부터 독서모임 구성원들의 독후감을 하나씩 전달받았는데, 책을 끝까지 그리고 공감하면서 읽어준 마음이 고스란히 독후감에 담겨있어 정말 고마웠고 부산으로 가는 길이 정말 기대되었다.
기자가 선호하는 글자크기와 글자체로 인쇄된 독후감, 기자가 박수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신 불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활용한 야광봉 등 어느 하나까지도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던 그야말로 마음 따뜻했던 북토크였다.
북토크에서 다양한 내용의 질의응답이 오고 갔는데,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었던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작가로, 기자로, 검우로, 첼리스트로,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어떤 의사소통 방법이 가장 편하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질문을 받았을 당시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질문에 대해 사실 그대로 답변했는데, 돌이켜보면 기자에게는 정말 의미있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시청각장애가 있는 기자는 의사소통 방법이 일관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맞춤형 또는 편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어떻게 보면 적재적소에 특화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기자가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빠르고, 편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들이 어느 순간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로서 취재나 인터뷰를 진행해야 할 때는 문자통역을 기사를 쓰기 위해 중요한 내용들을 나중에 다시 확인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자통역받은 파일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인터뷰하는 사람의 말을 조금이라도 생생하게 전달받기 위해서는 수어통역보다 문자통역이 더 전달력이 풍성할 수 있다.
첼리스트로서 첼로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핸드폰에 무선 마이크를 연결하고, 그 무선 마이크를 첼로 선생님이 잡고 레슨 중에 하고 싶은 말씀을 하면 무선 마이크가 연결된 기자의 핸드폰 화면에 문자로 변환되어 나온다. 기자는 그 글자들을 보면서 레슨을 받는 것이다.
첼로 레슨에서 모든 내용이 다 어플을 통하는 건 아니다. 첼로 선생님은 기자에게 배운 수어 중 ‘다시’를 레슨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신다. 방금 연주한 곡의 잘못된 부분을 다듬은 뒤 ‘다시’ 연주해보라는 말을 해야 할 때, 굳이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하지 않고 ‘다시’ 수어를 기자에게 보여주면 기자도 바로 선생님의 의사를 이해하고 연주하기 위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올해부터 새롭게 배우고 있는 검도도 두 가지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먼저 30분은 관장님과 이론 수업을 하는데, 이때는 첼로 레슨 때처럼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한다. 이어서 도복을 입고 죽도를 들고 임하는 검도 수련에서는 손바닥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수련 중 기자가 잘못된 동작이나 실수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또는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를 관장님이 기자의 손바닥에 글로 적어서 전달하는 것이다.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강의를 하는 중에는 근접수어와 손바닥 필담을 주로 활용한다. 강의 중에 많이 받는 질문이나 사용하는 단어들은 활동지원사가 수어로 기자에게 통역하고, 강의 듣는 사람의 질문은 기자의 손바닥에 적어서 전달해 주는 것이다.
상황별로 의사소통 방법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다. 첼로 레슨과 검도 수련 때도 문자통역을 받은 적이 있고, 인터뷰를 할 때는 수어통역이나 음성인식기능 어플을 활용한 적도 있다. 그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분명한 불편함이 있었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의 상황별 의사소통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북토크에서 상황별 의사소통 중 어떤 게 가장 편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각 의사소통마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있어서 어떤 방법이 가장 편하다고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음성인식기능 어플과 문자통역은 빠르고 긴 대화는 가능하지만 기자가 상대방의의 얼굴이 아닌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봐야 하기 때문에 대화의 감수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손바닥 필담은 말하는 이가 손에 글을 쓸 때마다 기자도 따라 읽으며 공감하는 대화는 가능하지만, 길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엔 체력적으로 쉽지 않다.
근접수어는 시간을 절약하며 빠르게 의사를 전달해야 할 때 가장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이지만, 수어에 담긴 뜻만 전달할 수 있을 분 상대방이 말한 ‘문장’을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즉 첼로 선생님이 “다시 한 번 더 연주해 봐요”라는 말을 하고 싶어도 ‘다시’라는 수어 한 번만으로 그 의사를 전달하면 선생님이 하고 싶은 ‘문장’은 전달되지 않고 ‘다시’라는 의도만 전달되는 것이다.
문자통역, 음성인식기능 어플, 근접수어, 손바닥 필담. 새삼스럽지만 기자가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법은 무려 네 가지나 된다. 그것도 항상 한 가지의 의사소통을 우선시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에 특화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물론 기자와 의사소통을 하는 상대방의 의사소통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번 북토크는 시청각장애인으로서 기자의 정체성과 의사소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그에 맞는 의사소통 방법을 선택하여 자립생활을 영위해 가는 시청각장애인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595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