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아침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코에서 콧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만성비염 체질이라 그렇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콧물은 멈추지 않았다.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닦으면서 감기가 찾아온 건가 걱정했다.
하필 그날은 오전에 3시간짜리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강의 장소에 도착해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히터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콧물이 멈췄다. 역시 만성비염 때문에 집의 공기가 차가워서 그랬던 거라고 안심하며 강의실로 들어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콧물이라는 녀석은 쉽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강의를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심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강의를 계속 진행했다. 코를 훌쩍이면서 콧물이 콧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기어코 액체 한 줄기가 콧구멍 밖으로 흘러내렸고, 어쩔 수 없이 강의를 하면서 손으로 그 액체를 닦아내야만 했다.
일단 콧물을 훔쳐내서 상황을 수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금방 다시 콧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다시 손으로 닦아내고 있는데, 한켠에 앉아 있던 활동지원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보였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 의아해 하며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활동지원사가 다가와서 휴지를 건네줬다. 고마운 마음으로 가뭄에 단비같은 휴지로 얼른 콧물을 싹 닦아내고 여차저차 강의 첫 시간을 마쳤다.
쉬는 시간이 되어 강사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에 활동지원사가 편의점에 가자고 했다. 약을 사야겠다고. 만성비염이 아니라 코감기에 걸렸다는 걸 확실하게 체감한 상황이라 별말 없이 활동지원사와 함께 편의점에 가서 약을 샀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편의점에서 약을 사본 적이 없다. 감기 기운이 와도 진짜 못 일어날 정도로 심하게 아프지 않는 한 약국이나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그냥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을 하거나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며 ‘셀프 치료’를 하곤 했다. 또 약을 사더라도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필요한 약을 달라고 하지, 편의점에서는 약을 산 적이 없다. 편의점에는 약만 있는 게 아니기에 약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
편의점에서 활동지원사가 사준 약을 먹었다. 알약 하나와 액체가 담긴 작은 병 하나를 마셨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기가 막힌 결과가 나타났다. 15분의 쉬는 시간에 편의점에서 약을 사와서 먹은 뒤, 콧물이 멈춘 것이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나은 것이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2시간의 강의는 콧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사히 진행했음은 물론이다.
역시 시청각장애가 있어서 너무 몰랐던 게 많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아프면)약을 먹어야죠, 이 곰탱아!”라고 기자의 손바닥에 적어주며 핀잔을 주던 활동지원사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셀프 치료라는 건 둘째치고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하기 어려우니까. 바로 약을 지어서 빨리 치료하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게 좋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편으로는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활동지원사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장애인이 잘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주고, 약국이나 병원까지 가기 어려울 때 편의점에서 필요한 약을 살 수 있도록 대신 눈이 되어 주고, 약에 적혀있는 복용법도 알려주는 등 정말 중요한 역할이 있었기에 좋은 컨디션으로 강의라는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편의점에서 샀던 그 약 덕분에, 아니, 활동지원사의 지원 덕분에 그날 아침에 찾아왔던 코감기는 기자 인생에서 최단 시간 머물다 간 감기로 기록될 것 같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0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