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규 국립한경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객원교수. ©에이블뉴스
박형규 국립한경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객원교수. ©에이블뉴스

2025년, 우리는 이제 새로운 정부를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를 맞이하여 장애인 ‘OTT 접근권’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 풍요 속에 외면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경기도에 등록된 장애인은 약 59만 명. 이중 중증장애인은 약 25만 명에 이른다. 시각, 청각, 지체, 발달장애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은 콘텐츠 접근에 물리적·인지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특히 고령 장애인의 경우, 단순한 조작조차 어려워 OTT 서비스는 ‘존재는 알지만 사용할 수 없는 세계’에 가깝다.

문제는 이 상황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문화권, 정보 접근권, 사회참여권의 침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은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에 머물러 있다. 복지관, 경사로, 점자블록에 예산은 투입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의 포용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반면 해외는 다르다. 영국은 ‘Equality Act(평등법)’를 통해 방송 및 OTT 사업자에게 접근 가능한 콘텐츠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BBC iPlayer 등 공영플랫폼은 수어해설, 음성해설, 자막 제공을 표준화했다. 미국은 ‘21세기 통신 및 동영상 접근성법(CVAA)’에 따라 방송 재전송 콘텐츠에 대한 자막과 화면 해설을 강제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Accessible Canada Act’에 따라 디지털 콘텐츠 접근성을 법으로 규율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장애인의 디지털 접근권’을 단순한 편의가 아닌 기본권으로 보고 제도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국내 OTT 플랫폼의 접근성은 여전히 자율에 맡겨져 있고, 장애인을 위한 자막·음성 안내·UI 접근성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법과 정책의 부재, 국가적 의지의 부족이 만든 공백이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도가 주민사업예산으로 추진 중인 ‘장애인 OTT 이용료 지원 사업’은 전국 최초의 시도이자 디지털 포용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공익형 OTT 플랫폼을 선정해 중증장애인 3,500명에게 월 1만 1천 원의 이용료를 최대 10개월 지원하며, 전문기관을 통한 콘텐츠 이용 교육, 조력 서비스, 성과평가도 병행된다. 이는 단순한 시혜적 복지를 넘어, 실질적인 이용 환경을 갖춘 디지털 권리 보장 실험이다.

그 의미는 단순히 ‘넷플릭스 등을 보게 해주자’는 데 있지 않다. 이는 문화 향유의 권리 보장, 디지털 격차 해소, 삶의 질 개선, 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중앙정부와 타 시도로 확산될 수 있는 포용정책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 정부의 책임 있는 응답이다. 국가가 디지털 전환을 미래전략으로 내세우는 지금, 그 출발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디지털 환경’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OTT 접근권은 복지의 사각지대를 넘어선 정보권과 표현권의 문제다. 따라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장애인 디지털 접근성 기준의 법제화가 시급하다. 자막, 음성해설,수어해설 등 접근성 기능을 콘텐츠 제작 및 송출 단계에서부터 표준화하고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장애인 콘텐츠 접근 비용에 대한 국가 예산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선도적 사업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제도 설계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장애인 접근성 콘텐츠 제작 인력 양성 및 고용 연계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당사자 참여 없이 진정한 포용은 불가능하다.

넷째, 공공 콘텐츠 플랫폼을 통한 장애인 우선 접근 서비스 강화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EBS, 공공 OTT, 지상파 등은 일정 비율 이상을 접근성 콘텐츠로 구성하고, 당사자 자문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장애인의 디지털 접근권은 단순히 콘텐츠 소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가’라는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자 약속의 척도다.

경기도의 시도는 작지만,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실천한 첫걸음이다. 새 정부가 이 흐름에 동참해 ‘디지털 포용국가’를 선언하고, 정책·예산·입법으로 이를 실현하길 바란다.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정책 의지다. 장애인을 위한 OTT 지원은 대한민국이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시금석이다.


※기사원문-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 idxno=222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