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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미디어 속 장애 표현의 중요성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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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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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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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상담가
동료상담가

미디어 속 장애 표현의 중요성

휠체어를 탄 사람과 뒤에서 미는 사람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장애는 이를 접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그만큼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픽사베이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사람들은 어릴 때 글을 배우면서 동화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로부터 동화 속 이야기를 듣거나 직접 글을 읽으며 동화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렇게 어릴 때부터 접하는 동화는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권성징악이라는 교훈도 있지만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는 게 대표적이다.

“심청전”에서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는 시각장애가 있는 자신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어떻게 했나? 딸 심청을 파는 양심도 없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동화는 심학규가 기적적으로 눈을 떠서 시각장애인에서 비장애인으로 마무리된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그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또는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뭐든지 해야만 하는 걸까. 심지어 가족까지 희생시킬 수도 있고 심학규가 보여준다. 그리고 심학규가 마지막에 눈을 뜨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될 수 있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남기고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된다’는 결말은 “반쪽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반쪽이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오던 그는 결말 부분에서 갑자기 집 뒤채로 갔다오더니 순식간에 비장애인이 되었다. 동화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장애인이 된 반쪽이는 ‘훤칠한’, ‘늠름한’ 등의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를 보며 놀라워하는 사람들에게 반쪽이는 ‘예전에 죄를 지어서’ 반쪽이의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즉 “반쪽이”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된다는 결말뿐만 아니라 장애의 원인을 ‘죄’로 정의하고 있다. 죄를 짓거나 나쁜 짓을 하면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건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잘못된 기준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다.

장애를 이렇게 형상화한 동화를 보고 자란 사람들은 죄를 짓거나 나쁜 짓을 하면 장애인이 된다고. 장애인이어도 좋은 일을 하면 비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자연스럽게 장애는 ‘나쁜 것’이나 ‘죄’와 연결짓게 되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는 걸 불편해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영화 “청풍자”에서 아빙(양조위)은 시각장애를 가진 피아노조율사다. 영화에서 아빙은 눈을 치료해서 시력을 회복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었을 때만큼 청력에 집중해서 주파수를 맞추는 일에 집중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눈을 손상시켜 스스로 다시 시각장애인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되었다가 다시 장애인으로 되는 서사 구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 속 장애에 대한 표현은 이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동화 속 주인공과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장애가 지닌 의미와 역할, 서사 구조는 인권 감수성이 향상된 오늘날 특히 비판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물며 홍보 포스터에 휠체어를 탄 사람 뒤에 비장애인이 휠체어를 잡아 주고 있는 장면만 봐도 그렇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혼자 직접 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지만, 어떤 시각에서는 휠체어는 누군가가 밀어줘야만 하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미디어에서의 ‘장애’가 대중들에게 바르게 전달되고 이해될 수 있도록 심층적인 고민과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2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