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한 정당 대변인의 막말이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정치인들의 개인을 향한 도를 넘은 비난은 흔하디흔한 일이고 그 무례함의 배경은 당파적 갈등이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늘 일어나는 그들만의 다툼이라고 치부하는 이도 있으나 이번 일은 장애인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는 점에서 쉽게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전체 국민의 5% 정도이며 미등록 추정 장애인의 수는 두 배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 구성 비율에 정확히 맞추어 장애인 의원 수를 당장 20명쯤으로 늘리는 것이야 어렵겠지만 전체 의석 중 1% 남짓을 차지하는 장애인 비례대표 의원의 수가 과도하게 많다고 주장하는 것은 장애 혐오 발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국회는 국민 전체의 삶이 나아질 방법을 논의하는 협의체이고 국회의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대리하는 헌법기관이다. 국민은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투표하여 대표자를 뽑지만, 선거 방식의 현실적 한계로 인해 지역구 의원으로는 의견을 전달하기 어려운 소수집단의 대표를 비례 의석으로 채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를 비난하거나 그 숫자가 과도하다고 존재 의미를 깎아내리는 것은 장애인 전체를 혐오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장애인의 삶의 수준을 결정짓는 것은 의학적 선고보다는 그 사회가 가진 장애 포용 능력에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장애인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고 있지만 그 집단 전체를 포괄하는 생활 수준의 대푯값은 비장애인들의 현재에 비해 여전히 크게 뒤처져 있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 비례대표의 숫자는 많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검사 출신이나 특정 지역 혹은 특정 학교 출신이 비정상적인 비율로 많은 것을 비판하지는 못하고 소수를 대변하는 비례대표의 숫자를 문제 삼는 것은 비열한 추태이고 차별적 혐오이다.
그는 발언의 대상이 된 의원이 가진 학벌과 재력을 이유로 그녀는 장애인을 대표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장애인의 이미지는 학력도 경제 수준도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장애인은 어떤 면으로 보아도 어려운 사람이어야 하고 그들 중 가장 불편한 이가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른 의원들이 선출되는 기준과 다르게 장애인 비례대표에 적합한 이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약자성이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가 가진 왜곡된 장애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제도를 만들고 대표자를 뽑는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다른 이들의 방법론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궁극적 목표는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현실 정치가 개인의 출세와 당파적 이기주의로 소모적 다툼만을 계속하더라도 국민 모두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정치인의 기본 신념마저 버려서는 안 된다. 만물의 이치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온기는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옮겨간다. 정치가 우선하여 살펴야 할 곳도 낮고 차가운 곳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장애인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었다는 측면에서 장애인 비례대표의 숫자는 결코 많지 않다. 오히려 막말과 혐오를 일삼는 정치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과도하게 넓어 보일 뿐이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5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