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사진(기사와 무관). ⓒ장애인제도개선솔루션
KTX 사진(기사와 무관). ⓒ에이블뉴스DB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회원들과 서울로 이동하는 일정을 계획했을 때, 처음 겪은 난관은 바로 예매 과정이었다. KTX 한 편성당 전동휠체어 이용석이 단 두 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십여명의 전동휠체어 이용 회원들이 단체 이동이 불가능하다 보니 우리는 열차 시간을 나눠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몇분 뒤 열차, 그 몇분 뒤 열차……, 일부는 오전 일찍 출발해야 하고, 일부는 늦은 열차를 타야 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서울역사 안에서 지방에서 오고도 남을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일행과 떨어진 채로 마냥 기다려야 하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구나 전국 어디서나 동시에 KTX 예매가 가능하다 보니 티켓 경쟁이 치열해 전동휠체어석 두 자리가 금세 매진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조금만 늦어도 다른 이용자가 예매를 마쳐버려 원하는 시간대는커녕 계획된 일정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장애인의 이동이 단순히 ‘불편’을 넘어, ‘운’과 ‘속도’를 요구하는 경쟁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순한 이동이 ‘기다림’과 ‘분리’, 그리고 ‘경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편의시설 부족을 넘어선다. 코레일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100% 지분을 소유한 공기업이다. 이동권은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이며,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공공교통수단의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KTX 노선에 배정된 전동휠체어석은 열차당 2석에 불과하다. 한 열차에 수백 명이 탑승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불편은 매우 구체적이다. 단체 이동이 불가하니 일정 조율이 어렵고, 역에서 장시간 대기해야 하며, 탑승 리프트 작동과 화장실 위치 등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비장애인에게는 클릭 몇 번이면 예약이 끝나는 과정이, 장애인에게는 전화와 확인, 시간 분산 등의 복잡한 절차가 뒤따른다. 이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구조적 차별로 볼 수 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의 현실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신칸센은 한 열차당 최대 5개의 휠체어석을 확보하고 있고, 영국 고속열차는 휠체어석을 일반 좌석과 동일한 공간 배치로 설계해 사전예약 없이도 이용 가능하다. 반면 KTX의 전동휠체어석은 최소 기준조차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단순히 시설 부족이 아니라,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얼마나 고려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코레일은 일부 접근성 개선을 시행하고 있지만, 열차당 좌석 수 확대라는 근본적 문제에는 명확한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 한계라는 설명은 현실의 제약을 완전히 정당화하지 못한다. 국가가 운영하는 공기업이 장애인의 이동권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상황은 공적 책무의 부재로 해석될 수 있다.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이동권 문제는 단지 좌석 몇 개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장애인의 사회참여, 자립, 교육, 문화 향유, 노동권을 보장하는 기본 조건이다. 지금처럼 한 열차에 두 자리만 배정되어 있다면, 장애인은 계속해서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고, 일행과 분리되며,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동권은 배려가 아니라 권리다.

따라서 정부와 코레일은 다음과 같은 개선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KTX 전동휠체어 좌석 의무 비율을 현실에 맞게 설정해야 한다. 둘째, 신형 차량의 휠체어석을 확대하고, 기존 차량도 개조를 통해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셋째, 단체 이동 장애인을 위한 사전예약과 동행보장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탑승 절차와 편의시설의 표준화를 통해 추가적인 불편을 줄여야 한다.

피곤이 내려앉은 귀향에서도 왔던 길을 고스란히 반복하며 결국 우리는 오고 가는 전 과정에서 “같이이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이동권의 현실”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현재 ‘두 자리’에 갇힌 현실은 장애인의 이동을 제한하는 상징적 사례다. 같은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이 함께 이동할 권리, 그것이 기본적 시민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고속철도는 여전히 최소 기준에 머물러 있다. 전동휠체어 이용자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가 아니라 권리의 인정이며, 좌석 두 개를 넘어서는 공공기관의 의지와 정책 전환이다.

이제는 두 자리를 넘어,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동권은 평등한 사회참여와 자립,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이다. 장애인의 발을 묶어온 ‘두 자리’의 현실이 바뀌어야, 모든 국민이 같은 시간표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


※기사원문-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 idxno=226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