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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 [투쟁결의문] 그럼에도 삶은,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 김태현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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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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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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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양산
푸른양산

12차 삭발결의자 김태현 경기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사무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3월 30일부터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까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답변을 촉구하며 매일 아침 8시, 삭발 투쟁을 합니다. 장소는 인수위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3호선 경복궁역 7-1 승강장(안국역 방향)입니다. 비마이너는 삭발 투쟁을 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투쟁결의문을 싣습니다.

김태현 사무국장의 삭발 전 모습.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었다. 머리에는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라고 적힌 띠를 둘렀다. 사진 이슬하
김태현 사무국장의 삭발 전 모습.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었다. 머리에는 ‘장애인권리예산 쟁취’라고 적힌 띠를 둘렀다. 사진 이슬하

2004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이후로 또다시 삭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참으로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합니다. 이렇게 갈등의 중심에 서서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말대로가 아닌, 문명과 선진국의 방향으로 판단하고 행하는 것, 나의 결정과 행동이 결국은 세상을 이롭게 바꾸는 한 걸음이 된다는 것이 나의 몸을 가볍게 합니다.

이동권 투쟁 21년은 박경석과 함께 지내온 길이었습니다. 최옥란 열사와도 함께였습니다. 때론 부딪히며, 때론 서로 위로하며, 때론 멀리하며, 때론 함께 싸우며 지냈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경석이형과 전철 타기를 함께 했습니다. 그때 경석이 형이 저를 온건주의자라고 동지들에게 소개했는데 맞습니다. 저는 마음이 여려 사람과의 부딪힘을 두려워하고 싸움과 다툼을 피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민은 계속 하고 있습니다. 과연 잘 사는 사람들만 잘 살면 그게 좋은 일일까요?

삭발 중인 김태현 사무국장. 그의 뒤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 수도권 지하철’이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이슬하
삭발 중인 김태현 사무국장. 그의 뒤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 수도권 지하철’이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이슬하

21년 전, 아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걸어 다녔습니다. 비록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요. 장애 특성상 50년 넘게 좋지 않은 자세로 지내 경추협착이 심해져 경추수술을 하게 되었고 2년 전부터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열악한 이동환경 때문에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사실 조금은 몰랐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제야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며 느끼는 것은 문제가 발생하면 장애인 당사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소송해서 재판을 해도 기각이 됩니다. 잘못은 존재하는데 책임질 주체가 없다?

삭발을 마친 김태현 사무국장이 위쪽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어제(13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토론을 보며 이 글을 썼습니다. 경석이 형, 애 많이 쓰셨습니다. 토론회를 보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만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데, 이준석 대표는 이 주제로 이야기했다가 갑자기 저 주제로 이야기하고, 참 쉽게 토론을 이끌어 갔습니다. 정말,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서 얼마나 더 일일이 설명해야 할까요?

2002년이 생각납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월드컵 열기로 뜨거울 때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월드컵경기장에서 장애인의 관람권 및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는 월드컵을 반대한다고 시위를 했었습니다. 불과 30여 명의 활동가를 200명 넘는 전경이 에워싸고 집회를 막았습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과, 비장애인과 다른 목소리를 내야만 했을까요?

삭발을 마친 이우연 양주디딤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왼쪽)과 김태현 사무국장(오른쪽). 가운데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삭발을 마친 이우연 양주디딤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왼쪽)과 김태현 사무국장(오른쪽). 가운데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50년 넘는 인생 중 20년 넘게 활동해 오면서 유일하게 남에게 ‘내가 이런 것을 했었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시내에 돌아다니는 저상버스와 각 지하철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입니다.

저도 이동권 투쟁 때문에 전과가 8범인가 9범인가, 심지어 생일에 연행되어서 검찰청에까지 잡혀간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대한민국 내 차별을 없애고 문명국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이전에 투쟁하고 삭발하셨던 여러 동지가 들은 욕과 비난이 난무한다 하여도,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아울러 투쟁도 계속될 것입니다.

김태현 사무국장이 지하철에 타고 있다. 김 사무국장이 탈 비좁은 공간 뒤로 비장애인 승객들의 발이 보인다. 오른쪽엔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있다. 사진 이슬하
김태현 사무국장이 지하철에 타고 있다. 김 사무국장이 탈 비좁은 공간 뒤로 비장애인 승객들의 발이 보인다. 오른쪽엔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있다. 사진 이슬하


*출처 : 비마이너(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 idxno=23126 )_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