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생기면 으레 정신장애인은 치료가 필요하다거나, 정신장애인끼리 모이면 사고가 발생하니 전문가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곤 한다. 물론 정신장애인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고, 약물이나 심리상담의 도움을 빌릴 필요도 있다.
정신장애인의 치료의 전 과정을 지휘하는 전문가는 의료진이다. 법적으로 의사만이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입원 오더를 내리고, 장애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다. 의사는 약물을 선택하고 처방하는 권한도 가지고 있다. 일부 의사는 20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정신치료를 하기도 한다. 진단에, 입원에, 약물 처방에, 간단한 상담까지 의사는 정신의학 전 과정의 최고의 전문가로서 대우받고 있다.
정신장애계에는 상담심리사와 임상심리사도 빠질 수 없다. 모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일정한 기간과 내용이 정해진 수련 과정을 이수한 다음 별도의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해야 한다. 권위 없는 자격증이 난립하는 심리 관련 업계이지만, 정부나 학회가 관리하는 자격증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고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재활 과정에서 함께하는 것은 사회복지사이다. 병원에서, 거주시설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재활시설에서, 자립생활센터에서, 심지어는 이들과 큰 관련이 없는 당사자단체에서까지 사회복지사는 곳곳에서 일한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2급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 별도의 시험을 거쳐 1급 자격증을 취득한다.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사업 계획부터, 예산 분배, 사업 진행 등의 전 과정을 사회복지사가 돕는다. 당사자단체가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사회복지사의 협력이 중요하다. 이들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당사자단체를 연구한 논문이 있을 정도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역시 당사자단체와 자립생활센터 등에서 일한다. 주로 동료지원가(회복된 정신장애인이 동료 정신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람)와 절차보조원(입퇴원 절차에 놓인 정신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람)으로 근무한다. 동료지원 활동은 이미 그 성과가 증명되어 많은 당사자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다.
뉴스에 따르면, 서울시에 소재한 모 단체는 사업 첫 해 3명, 21년 5명, 22년 8명 등이 저소득층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 동료상담가들은 3년 동안 재입원율이 0%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사람들이다. 의사는 진료와 치료에서, 상담사는 심리상담 기술에서, 임상심리사는 심리검사와 심리재활에서,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사업의 기획과 실무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였다. 그렇다면 당사자도 당사자활동과 당사자주의, 동료지원의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아니까, 정신과 약을 먹어본 사람이 자신의 경험의 전문가로 대우받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러한 인식은 부족하다. 지난 4월 20일, 대한정신건강의학회에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 프로그램의 대다수가 (과학적) 근거 기반이 부족하다고 주장하였다. 다행히 위기쉼터와 동료지원 서비스 등은 연구 결과에서도 효과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것도 엄격한 검증이 되지 않아 효과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학회의 주장이다.
학회의 입장대로 기존 정신건강서비스의 질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 및 타 전문가가 고심하여 개발한 서비스를 의학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일 수도 있다.
당사자를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는 이번 달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한 정신장애 관련 커뮤니티에서 성범죄와 그로 인한 자살사건이 벌어지자 자조모임을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조모임에 대해 “중재자인 전문가가 없는 정신과적 자조모임이 이렇게 해롭다”거나, “전문가 없는 자조모임에서는 누군가가 나으면 비난하기도 한다”, “유사 자조모임 나가지 말라”는 등 자조모임 자체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부나 다른 기관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는 당사자단체나 자립생활센터 등은 규격화된 동료상담가 과정을 실시하고, 다른 기관의 감독도 받는 등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거나 강조하는 사람은 없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자신의 경험의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은 다른 전문가의 간섭과 당사자단체 및 당사자활동에 대한 불신을 불러왔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당사자단체는 앞으로 예산 배정 및 활동 전반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당사자단체를 이용하는 당사자, 특히 전문적인 정신의학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당사자일 것이다.
장애계에 길이 남을 개탄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전장연과 발달장애계에서 활동해온 비장애인 활동가가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에 임명된 것을, 지장협 등 29개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당사자 채용 원칙’을 들며 극렬히 반대한 것이다. 결국 당사자는 사직하고 말았다.
물론 해당 직위는 ‘당사자 채용 원칙’을 20년 동안 지켜온 상징적인 일자리이다. 그러나 ‘당사자 채용 원칙’을 강조하게 되면 정신적 장애계에서는 한 명도 채용되기 어렵게 된다. 정신장애인 및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역량강화가 지지부진했고, 결국 정신적 장애계에서는 비당사자가 아니면 장애인권익지원과장에 채용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역량강화를 통해 경험의 전문가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당사자 전문가를 대대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별도의 교육과정을 만들고, 내실 있게 운영하여 많은 당사자의 역량강화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 경험의 적극적인 전파가 필요하다. 책, TV, 유튜브, 강연 등으로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경험과 당사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 활동가들이 당사자단체와 투쟁 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 활동가가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당사자 전문가를 정신건강 영역의 전문가로서 입법화하고 관련 규정을 신설하여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대의견이 있다 하여도, 당사자주의와 당사자주도는 거스를 수 없는 장애계의 흐름이 되었다. 모든 정신적 장애인이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는 당사자 전문가가 너무나도 필요하다. 법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노력을 통해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의 전문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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