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자립을 위한 작은 한걸음 소통

[더인디고] 과연, 장애인의 사회참여 만이 답일까?
작성일
|
2023.10.06
조회수
|
195
작성자
|
동료상담가
동료상담가

[기고] 과연, ‘장애인의 사회참여’만이 답일까?

3
[특별기고] 과연, ‘장애인의 사회참여’만이 답일까?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자립이나 사회참여가 뇌성마비 장애가 있거나 발달장애가 있는 시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획일적인 프레임 깨기가 장애계의 새로운 담론이 되기를 바란다. ⓒ 더인디고 편집 
  • 왜 우리는 ‘장애인의 사회참여’만을 외칠까? 사회를 정의롭게 진보시키고 싶은 ‘정의로운 욕망’의 발로는 아닐까?

나는 아주 심한 언어장애를 동반한 뇌병변장애인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혈기가 왕성할 때는 한 명이라도 나와 같은 심한 언어장애인의 말을 알아듣게 하려고 모든 전화를 문자가 아닌 음성 전화로 한 적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모든 토론회나 행사에 가서 늘 마이크를 잡으려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그게 세상을 바꾸는 또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와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과 즐겁게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놓친 것이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나의 감정과 신경을 거슬리는 존재한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정의감이라는 감정 역시 갖고 있기 때문에, 불의한 것을 바로 잡으려는 것도 역시 사람의 본능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정의는 원하지만, 나의 감정과 신경을 거슬리면 참기 힘든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카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거나, 내 말을 편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상대일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카톡으로 소통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호혜적인 관계가 아니면,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낄 수밖에 없는 유약한 존재라는 것을 쿨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장애인의 사회참여’만을 외칠까? 정말 장애인의 행복을 위한 것일까? 사회를 정의롭게 진보시키고 싶은 ‘정의로운 욕망’의 발로는 아닐까?

어쩌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정의의 틀 속에 ‘참여’하는 것이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은 호혜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장애인에 국한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범주 속에 벗어나는 장애인들의 행복과 권리를 말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의관은 아직도 호혜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정의관에 머무르면서 그들을 그 프레임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요하고 억압하면서 말이다.

이제,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사람을 위한 것인지, 사회 전체의 진보와 우리의 정의감을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을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때가 온 거 같다, 그리고 꼭 “참여”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분배받고, 행복을 누리는 것을 보편적인 정의로 만들 수 있는 발칙한 상상을 해야 되지 않을까?

2002년부터 서울DPI에서 장애인단체 활동을 시작한 안형진 박사는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동문장애인복지관을 거쳐 현재는 삼육대학교 사람중심실천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장애인연맹 정책위원과 한국장애인자랍생활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정책으로 석사, 삼육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https://theindigo.co.kr/archives/5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