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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박관찬의 기자노트-크고 멋진 기합소리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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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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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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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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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찬의 기자노트〕크고 멋진 기합소리

손바닥 필담 중인 모습
시청각장애가 있어 본인이 내는 기합소리가 어떠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관장님이 ‘크고 멋진 소리’라고 말씀해주셔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관석 작가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검도라는 매력적인 운동에 입문한 지 어느 덧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도복을 입고, 죽도를 들고, 호구를 착용하며 정말 ‘폼’ 하나만큼은 멋진 운동이라 생각했지만, 검도를 하면서 정말 심신단련과 예의라는 측면에서 많은 걸 배웠다. 그 배움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고, 관장님의 말씀처럼 ‘평생검도’가 인생에서 참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들과 별개로 검도를 하면서 마음속에 한 가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검도를 하면 꼭 하게 되는 게 ‘기합’인데, 기자가 내는 기합 소리를 스스로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 기합이 궁금한 것이다. 자신의 기세를 표출하는 것인만큼 기합의 소리가 커야 하는데 제대로 큰 기합소리를 냈는지, 정확한 발음과 정확한 타이밍에 기합을 했는지 등 기합에 대해 많이 궁금했던 게 사실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검도 수련 초반에 관장님이 기합을 내보라고 했을 땐 상당히 부끄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청각장애가 있어서 어느 정도의 톤이 기합이라고 할 정도로 큰 소리인지 확실하게 감이 오지도 않았고, 평소에도 기합에 견줄 만큼 큰 소리로 말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오랜 시간 하지 않던 걸 갑자기 하려니까 뻘쭘하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수련에서 3동작, 2동작, 1동작을 할 때 ‘하나’, ‘둘’, ‘셋’ 등 수를 세는 것부터 ‘머리’, ‘손목’, ‘허리’ 등 죽도로 타격하기 위한 부위를 칠 때도 해당 부위를 기합으로 크게 말해야 한다. 또 빠른 머리치기를 하기 전에는 ‘얍’이라는 기합을 먼저 낸 뒤, 빠른 머리치기 동작을 시작한다.

평소 강의를 할 때는 마이크를 잡고 말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어느 정도 크게 말하면 괜찮았는데, 검도에서의 기합은 정말이지 평소에는 전혀 내볼 일이 없는 큰 소리가 필요했다. 가끔 화가 많이 났을 때 언성이 높아질 수 있는데, 잘 생각해 보면 검도의 기합은 언성 높임보다 더 큰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기합은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는 것이라지만, 매주 수련을 거듭하면서 기합에 적응이 된 어느 순간부터는 기합이 참 의미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평소 이렇게 크게 말하거나 소리쳐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검도에서 기합을 통해 내 몸속에 억눌러있던, 감춰있던 무언가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있기 때문이다. 마치 스트레스를 푼다고 할까. 그야말로 마음껏 기합을 내지르며 검도 수련을 하고 나면 정말 온몸에 힘이 다 풀리는 느낌이다.


그동안 큰 소리를 내볼 기회가 좀처럼 없던 생활 패턴에서 기합을 통해 큰 소리를 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검도는 정말 매력적인 운동이다. ©이관석 작가

그런데 두 번째 심사를 통과한 뒤, 그 소식을 관장님이 sns에 전하면서 처음으로 기자의 기합에 대해 언급하신 글을 봤다. “관찬 씨 자신의 기합소리가 얼마나 크고 멋진지 모르죠! 축하해요!”라고. 심사를 통과하고 승급했다는 사실보다 관장님의 이 한 마디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정말 제대로 기합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늘 물음표가 달려 있었는데, 관장님의 이 한 문장에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지난 6월 검도 입문 후 첫 심사를 받을 때의 분위기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자가 가진 시청각장애를 고려해 매주 일대일로 수련하다가 그날 처음으로 다른 검우들과 검도관이라는 공간에 같이 있게 되었다. 검우들이 내지르는 기합 소리는 기자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발구름을 할 때마다 기자에게 전달되는 그 ‘분위기’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발구름만으로 나는 게 아니라, 검우들이 기세를 표출하기 위해 내는 기합과 함께 아우러져 나는 것이란 걸 충분히 느꼈다.

이렇게 검도를 하며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시각장애가 있어서 죽도로 타격하고자 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배경의 색깔에 따라 더 구분이 어려울 때가 있다. 또 기합소리를 내도 스스로 그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기합을 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수련을 하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작이 흐트러지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밀어걷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3동작을 하다가 횟수가 뒤로 갈수록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빠른 머리치기를 할 때도 발구름을 하기 전에 죽도가 먼저 앞으로 나가버리기도 한다. 동작과 기합, 자세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정확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욕심 가득한 마음이 앞서서 아직까진 만족스럽게, 안정된 자세로 타격이 쉽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매주 검도 수련이 끝나고 나면 수련하기 전과 기분이나 마음가짐이 항상 달라져 있다. 수련 전에는 ‘오늘도 제대로 안 될 텐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도, 막상 수련이 끝나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 것처럼 홀가분하고 마음이 가볍다. 많은 땀을 쏟아내고 힘들게 수련했어도, 그 과정을 견디고 인내한 시간들이 소중하고 또 검도라는 운동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즐겁게 수련해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즐거울 것 같다. 이젠 기자의 기합소리가 얼마나 크고 멋진지 알게 되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멋진 관장님이 해주신 말씀이니까 말이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59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