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하는 지역의료, 소생안 어디에]
(1)늘 불안한 의료취약지 주민들
권역응급센터 접근성 낮은 합천
인구 79.7%가 1시간 이내 못 가
의료기관 35곳도 진료 제한적
주민들 "운 좋아야 산다" 한탄
보건지소 16곳 공중보건의 14명
일부 제외하고 순회진료로 메워
공보의 줄어 보건지소 감소 우려
군지역 공공의료체게 개선 필수
국내 보건의료 체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필수 의료 부족, 특히 지역 의료 공백 장기화 등 누적된 문제는 의정 갈등을 계기로 더 선명해졌습니다. 당연하다 여겼던 한국 의료 체계의 위태로운 민낯이 비로소 드러난 셈입니다. 전반적인 의료 체계 재설계가 절실한 지금입니다. 하지만 장기화된 의정 갈등 속에서 정작 지역 의료 문제는 논의장에서 정교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에는 18개 시군 중 14곳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만큼 세심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축소되고 생략됐던 경남지역 의료 현실을 5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일본 오키나와현 사례도 소개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 체계를 고민해 봅니다.
합천군 인구는 올해 9월 말 기준 4만 440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비중은 44.8%(1만 8148명)로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다. 고령층이 많은 만큼 의료 수요도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 접근성은 대도시보다 크게 떨어진다.
국립중앙의료원 '2022년 공공보건의료통계'를 보면, 합천군에서 차량으로 1시간 이내 권역응급의료센터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이 79.7%(2021년 기준 )에 달했다. 경남 평균 16.6%와 비교해도 심각하다. 언제 어디서 아플지 모르는 고령층은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운 좋으면 사는 거지요" = 석용환(79·합천군 쌍백면) 씨는 3년도 더 지난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석 씨는 2021년 3월 13일 복통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맹장염 정도로 생각하고 읍내 작은 의원에 갔다. 의원에서는 석 씨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바로 큰 병원으로 향하라고 일러줬다. 복통이 심해져 운전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 진주로 향했다.
그의 기억은 진주 한 병원 응급실에서 끊겼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며칠이 지난 뒤였다. 석 씨 병명은 대동맥 파열. 경상국립대학교병원에서 배를 가르는 대수술을 받고 겨우 살아났다.
"의사 말로는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수술받기까지 병원을 두 군데나 들렀으니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거보다 진짜 운이 좋아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로 석 씨는 늘 불안감을 안고 산다. 가슴속 시한폭탄이 또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골은 참 살기 좋습니다. 조용하고 적당히 먹고살 수도 있고요. 가장 큰 문제는 병원입니다.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큰 병원까지 한 시간은 가야 합니다. 당장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답답하네요."
전호열(83·합천군 쌍책면) 씨도 비슷한 얘기를 전했다.
"나이 먹을수록 병원 근처에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합천은 그 반대에 해당하는 곳 아닙니까. 옛날에는 작은 약방이나 약국이 면마다 하나씩은 있었는데 요즘에는 다 없어져 버렸으니까…. 약방 역할을 보건지소가 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며칠만 의사가 있어서 시간이 안 맞으면 읍내까지 나가야 해요. 큰 병원 가려면 대구나 진주로 가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은 거동하기가 불편하니 큰 마음 먹고 다녀와야 합니다."
◇최후 보루 공공의료도 위태 = 합천지역 의료기관 현황을 보면 병원 1곳, 의원 17곳, 보건소 1곳과 보건지소 16곳이 운영 중이다. 의료 기관 수만 보면 부족해 보이지 않지만, 경남에서 상대적으로 큰 면적, 고령 환자 이동 수단, 제한적 의료 서비스 등을 고려하면 의료 기반이 갖춰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공의료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 수도 줄어드는 추세다. 합천군 공중보건의(치과·한의과 제외)는 모두 14명으로 2022년보다 6명이나 줄었다. 반면 보건지소는 16곳으로 공중보건의 수보다 많다. 결국 일부 보건지소를 제외하고는 요일을 정해 순회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합천군은 '찾아가는 보건지소·보건소' 사업 등으로 의료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적지 않다.
안명기 합천군보건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중보건의 수가 줄어들다 보니 공보의가 다른 지소에 진료 나가는 날에는 보건지소에 간호사 혼자 상주하는 상황입니다. 어르신들에게 보건지소가 동네 유일한 건강 민원 해소 기관인데 그 역할을 못 하게 되는 문제도 있죠."
◇현상 유지조차 쉽지 않다 = 합천군 의료기관 관계자들은 공중보건의 수 감소와 민간 의료기관 기능 약화가 가속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대다수 의료기관이 최소 인력과 예산으로 운영 중인 만큼 언제든지 의료 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 소장은 걱정스러운 현실을 전했다. "공공의료 기관이 제 역할을 하려면 병원급 민간의료기관이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이 두 축이 같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새로운 모델 제시가 시급합니다."
그는 특히 공중보건의로 대표되는 공공의료 체계를 새롭게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중보건의 수급이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그러면 보건지소가 하나둘 통합되고 결국 보건소만 남게 될 수 있어요. 읍내에 사는 분들은 괜찮겠지만, 작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 의료 사각지대는 더 커질 겁니다."
공중보건의 ㄱ 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공중보건의 대신 현역 복무를 고려하는 의대생들이 늘었어요. 거기다 이번 의정 갈등을 계기로 현역 입대하는 이들도 늘어날 텐데 결국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공중보건의 ㄴ 씨도 의료체계를 꼬집었다. "공보의가 보건소·보건지소에서 할 수 있는 의료 행위가 많지는 않지만 의료기관이 부족한 군지역에서는 1차 진료 등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결국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게 중요한데 지금과 같은 공보의 시스템으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박신 기자
※기사원문-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 idxno=923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