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긴 방학이 끝나고 오지 않을 것 같던 새 학기가 찾아왔다. 학교 공사 일정으로 길어진 방학 기간 덕분에, 감사하게도 갓 태어난 아들과 충분한 교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눈을 뜰 때도, 잠이 들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외출할 때는 더더욱 함께였던 껌딱지와의 시간 덕분에 두 달 넘는 동안 학교 업무는 머릿속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매 학년 초는 언제나 바쁜 시기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된 이번 학기는 그 체감이 매우 진하다. 부서도 바뀌고 학급 담임까지 맡게 되어 더 헉헉대지만 그보다는 내게 추가된 ‘아빠’라는 역할의 무게가 준 변화라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제출할 서류 안내가 나오면, 이전의 나는 마감 기한보다 안내가 나온 시점에 최대한 빠르게 서류 제출을 완료했다. 평가 계획서도, 교육 계획서도 개인적인 서류들도 그 양과 부담이 클수록 더 빠르게 완성하고 제출했다. 쫓기지 않고 남들보다 빨리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했고,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미리미리 하면 될 텐데!’
‘날짜가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서두르는 건 어떤 심리일까?’
기한에 쫓기는 상황도 싫었고, 협업 상황에서 미리 제출하는 것은 구성원의 기본 덕목이라고 여겼다. 더 솔직히 말하면, 서류 제출이 늦는 분들은 게으르거나 예의가 없는 분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토록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동료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제출해야 할 서류는 밀리고, 주어진 과제들 앞에서 허덕거리고 있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게으르거나 나쁜 마음이 있어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다. 열심히 육아를 도왔고, 그러다 보니 길고 긴 방학은 어느새 끝을 향했다. 개학 이후 퇴근 후에라도 밀린 서류를 처리했어야 했지만, 그 시간에도 여전히 아기에게 밥을 주거나 놀아주거나 달래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직장의 퇴근은 곧 육아의 출근이고, 육아의 퇴근은 직장의 출근이 되는 시간이 반복된다. 내가 이런 상황이 되어 보니 이제야 다른 분들의 사정도 그랬을 수 있다는 이해의 마음이 생겼다. 아이를 기르는 모든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모든 동료를 이해하게 되었다.
미리 알았어야 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난 특별히 부지런한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른 분들에 비해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던 것이다. 업무 시간에 수행하지 못한 일을 퇴근 후 조용한 공간에서 처리할 수도 있었고, 촉박하게 지시되는 업무를 그때그때 대응할 여유도 있었다. 이해해 보려 노력해야 했지만, 직접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나의 상황을 시각장애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배려하려거나 도와주려 하거나 평가하려 할 때도 잘 알지 못함으로 인해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많은 자리에서 난 비장애인들도 소수인 장애인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접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 채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도 말했다.
그렇지만 나 또한 나와 다른 이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상황과 시간을 기준으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처지도, 성향도, 생각도 나와 다르다. 게으르거나 나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각자에게는 그 나름의 행동의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다. 장애를 이해 받고 싶다면 장애 아닌 다름의 사정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