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정현석 칼럼니스트】 몇 달 전, 교통사고를 당했던 동생을 지난 3‧1절 연휴에 다시 만났다.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 치료 기간을 지나 합의를 해야 할 시점에, 부모님으로부터 “너는 장애 때문에 합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니 부모가 하라는대로만 해라” 는 말을 들었던 동생이었다.

합의를 마무리했다는 소식은 전화로 듣기는 했지만, “사연이 길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 할 것 같다” 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거기에다 연말연시와 명절을 지나며 서로의 시간대가 맞지 않아 여러번 약속이 연기된 끝에 3월 초 연휴에나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식사를 마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에서 그가 불쑥 말을 꺼냈다. “ 작년에 그 일(교통사고) 내 뜻대로 내가 마무리했어요.”  

사연이 길다는 이야기를 했었기에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는지 물으니, 부모님 사이에도 의견이 갈렸다고 한다. 아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던 본인이 마무리짓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동안 보험사 담당자와 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합의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진다고 판단한 아버님이 “ 잔소리 말고 처음에 내가 이야기한 대로 해라” 라고 하면서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 좋게좋게 끝내면 될 것을 돈 좀 더 받겠다고 오래 끌면 되겠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병원 입원시 안내문. ©정현석
병원 입원시 안내문. ©정현석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는 동생의 얼굴은 그때의 감정이 살짝 올라와서인지, 약간의 떨림마져 느껴졌다. 좋게 끝낸다면 그건 그의 입장이 아닌 보험사의 입장이 될 확률이 높았다.

 

보험사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교통사고 환자가 순순히 받아들여 치료를 조기에 종결하거나 처음 제시한 합의금을 피해자가 수용한다면 좋게 끝나는 법이다.  그러나 합의라는 것은 처음부터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매년 열리는 최저임금 협상을 지켜보면 근로자 측과 사용자측 모두 최초 제시한 금액에서 합의되는 경우는 없었다.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 가면서 조금씩 합의점을 찾아 간다. 비록 그 결과물이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권리 주장,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장애인들에 권리 행사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과거에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들을 향해 “세상 참 좋아졌다”는 표현을 너무도 쉽게 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고, 이전보다 줄었지만 지금도 장애인의 권리 행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도 답답해서 내가 뭐라고 했나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내가 하늘에다 대고 부모님 부르면 잠시 세상으로 내려와서 보험사하고 합의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거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 안 하시더라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 ”

합의의 구체적인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부모에 의한 합의” 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의한 합의”라는 점에서 그에게는 적지 않은 의미를 알게 해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합의를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시간 투자를 했을 것이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를 마무리하려는 보험사 담당자도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내용들을 정리하여 보험사에 내밀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콜택시에 오르던 그가 한마디 했다. 

“ 나 진짜 보험사만  좋게 끝내기 싫었어”


※기사원문-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 idxno=219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