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도움받아 생애 첫 모델 참여
박수 갈채 속 왕복 10m '런웨이'
창원대 측 수요 조사 후 의상 제작
"선입견 넘어 희망 잇는 계기되길"

뇌병변 중증장애인 송준선(37·창원 진해구) 씨는 생애 첫 ‘런웨이’ 위에 섰다. 지난 16일 창원 진해구 풍호동 진해장애인복지관 1층 로비에서 열린 ‘재활로봇 패션쇼’(진해장애인복지관 장애아동발달지원센터·국립창원대 의류학과 주최) 모델로 참여하면서다.
송 씨는 이날 어깨부터 허리, 허벅지, 무릎, 발까지 상·하체를 감싸는 보행보조 재활로봇을 착용하고 무대에 등장했다. 신경이 손상된 환자 대상 보행 기능 회복을 돕는 기계다. 뒤에서 누군가 조정해야만 앞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그는 착용형 웨어러블 로봇 전문업체가 만든 이 제품을 입고 복지관 로비 중앙부부터 출입구 주변까지 왕복 10m 정도를 걸었다. 이동진 진해장애인복지관 물리치료사가 보조했다. 송 씨는 패션소에 맞춰 국립창원대학교 의류학과 학생들이 만든 검은 가죽점퍼와 찢어진 회색 바지를 입었다.
곳곳에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얼마나 환호성이 컸던지 걸을 때마다 나는 ‘위잉위잉’하는 재활로봇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느릿느릿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양옆 앞뒤로 모인 90여 명 시선이 집중됐다.
송 씨는 난생 처음 자신에게 쏠린 관심에 기뻤다. 습한 날씨 속 가죽 자켓을 입고 걸었어도 더운 줄 몰랐다. 그가 걸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다니 눈물 날 정도로 행복하다!’
송 씨는 2006년 8월 경기 안양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로 왼쪽 팔다리가 마비됐다. 반맹증 증상이 심해 두 눈 모두 시야마저 또렷하지 않다. 몸이 불편해 사고 후 지난 19년간 거의 집에서만 생활했다.


그처럼 몸이 불편해 걸음이 편치 않거나, 아예 걷는 것조차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이번 패션쇼에 다수 함께했다. 재활로봇과 제작 의상을 착용하고 런웨이에 도전했다. 로봇 대신 휠체어를 타고 패션쇼에 나선 사람까지 포함하면 이날 무대에 선 사람은 13명이다.
송 씨는 “본리허설까지 포함해 두 차례 연습을 거친 끝에 런웨이에 나섰다”며 “누군가에게 관심받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다가 진심으로 자리를 즐겨주는 분들을 만나니까 소름 끼치도록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21살 때 양산지역 과자 공장에서 일하다가 3개월 만에 왼쪽 팔 절단 사고를 겪은 또 다른 패션쇼 참여자 이화정(50·창원 진해구) 씨는 “학생들이 만들어준 캐쥬얼한 복장으로 많은 사람 앞에 서고 나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이번 행사로 장애인 또한 비장애인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장애아동발달지원센터가 창원대 의류학과 쪽에 협업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재활 보조기기를 예술적으로 조명하고, 장애인을 향한 포용적 사회 분위기를 확산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1월부터 기획이 시작됐다. 창원대 학부생과 대학원생 등 25명이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2명당 장애인 1명을 맡아 원하는 의상 수요를 조사했다. 그 뒤 모델 체형 치수까지 확인해 옷을 제작했다. 이들이 제작 전 과정에 관여해 만든 의상수는 15벌이다.
학생 디자이너로 참여한 창원대 의류학과 3학년 박설빈(21) 씨는 “학과 수업 때 이번 행사 진행 소식을 듣고 나서 함께하면 의미있겠다는 생각에 참여했다”며 “치수도 직접 재고, 손 바느질도 하면서 옷을 만들었고, 당사자에게서 옷이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김현아 창원대 의류학과 교수(학과장)는 “학생 디자이너들이 수요자 중심 패션쇼를 준비했다는 점, 그리고 집 밖에 나올 기회가 없는 분들에게 런웨이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노현길 장애아동발달지원센터장은 “걸음이 불편한 분들이 많은데 그들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져야 한다”며 “이 패션쇼를 통해 그들이 이용하는 보조 기구 또한 장애라는 틀에서 벗어나 조금 더 친근하게 여기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고, 의상 역시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되므로 다양한 의상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기사원문-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 idxno=937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