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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언제쯤 모든 비상약에 점자가 생길까?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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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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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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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상담가
동료상담가

언제쯤 모든 비상약에 점자가 생길까?

손에 들고 있는 약통 사진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은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비상약에 점자 표기가 없는 경우, 해당 약이 무슨 약인지 확인하지 못하므로 사용에 어려움이 있다. ©박관찬 기자
  • 비상약에 점자가 없으면 시각장애인에게는 비상약이 아닌 무용지물
  • 시각장애인도 비상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점자 표기 의무화 필요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병준(가명) 씨는 늦은 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뭘 잘못 먹은 건가 그날 먹은 음식들을 떠올려 봤지만 평소와 크게 차이나는 건 없었다. 원인도 모른 채 증상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병준 씨는 평소 활동지원사가 알려준 비상약을 놓아둔 곳을 찾았다.

평소 건강관리만큼은 자신 있다고 믿고 있던 병준 씨기에 활동지원사가 비상약을 어디에 둔다고 알려줘도 그 비상약들을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을 거라 자만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정말 그 비상약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비상약들이 담긴 상자를 열었던 병준 씨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상자에 담겨 있는 비상약들 중 그 어떤 것에도 점자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병준 씨가 찾는 소화제가 무엇인지 구분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준 씨는 전맹인 시각장애인이다.

병준 씨는 잠시 고민했다.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비상약을 새로 구매하며 편의점 직원에게 어떤 약이 소화제인지 알려 달라고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활동지원사나 지인 등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할지……. 시간이 너무 늦은 때라 병준 씨의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의점까지 혼자 가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병준 씨는 활동지원사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아직 잠들지 않은 활동지원사가 전화를 받았고, 병준 씨와 영상통화를 통해 병준 씨가 비상약 상자에서 하나씩 보여주는 약들을 활동지원사가 확인하며 어떤 게 소화제인지 찾을 수 있었다.

병준 씨는 “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도 혼자 있을 때 비상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럴 때 필요한 약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아무런 점자 표시가 없다는 게 좀 놀라웠다”면서, “시각장애인이 혼자 있다가 비상 상황이나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해질 것 같다”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병준 씨의 활동지원사도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비상 상황은 장애인도 대비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자칫 큰 사고나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땐 누가 책임져야 하겠나, 장애인의 유형에 맞는 대처 방안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판매하는 비상약 상자에 담겨 있는 약들을 눈으로 보지 않고 촉감으로 만져 보는 것만으로는 무슨 약인지 구분이 쉽지 않을 만큼 비슷비슷하다. 점자나 특정 스티커를 붙여서 구분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이상 시각장애인이 구분하기 쉽지 않다. 시중에 점자로 된 비상약이 자연스럽게 유통되어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판매되어야 하는 것이다.

병준 씨는 또 “비상약 상자 안에 있는 약들에 점자 표시가 있는 것 외에 약에 대한 사용설명까지도 점자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약이 어떤 약인지,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를 먼저 잘 인지한 후에 복용해야지 무턱대거 아무렇게나 복용했다가 자칫 더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비시각장애인이 비상상황이 생겨서 병원에 가기 어려울 때, 또는 병원까지 가지 않고 비상약으로 해결이 가능할 때 비상약이 담긴 상자를 찾는다. 상자 속에서 필요한 약을 찾고, 해당 약의 유통기한이나 복용방법, 주의사항 등을 확인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시각장애인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59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