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아, 저기 우리 학교 버스다. 1차 하교하나 보다.”
모임을 마치고 지인과 택시를 타고 가다가 반대 차선을 달리는 노란색의 스쿨버스를 보고 우리는 반가운 내색을 했다. 백미러로 눈이 마주친 기사님의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오, 자녀들이 특별한 재능이 있나 봐요. 특수학교 버스네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장애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예요.”
“아. 죄송해요, 몰랐네요.”
자신의 실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등 뒤에서도 느껴졌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했던 20여 년 전 그때 우리는 정말 괜찮았을까?
딸만 키울 때는 나도 특수학교나 장애에 대해 무관심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 아들이 장애 진단을 받은 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장애아이가 적을 둘 곳은 늘 부족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 아이를 받아달라고 애걸복걸하며 상담했지만 어느 한 곳 쉽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밀알학교 유치부를 알게 되었다. 새순반은 정원 4명에 보조교사까지 있어 천방지축 아들을 맡겨도 마음이 놓였다. 밀알학교가 들어설 때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도저 앞에 주민 남성이 드러누워 공사가 지연되면서도 결국 학교는 개교했다. 일원동 주위는 밀알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엄마와 단둘이 기거하는 전셋집이 많았고 친척 집에 얹혀사는 경우도 있었다. 관내 거주자만 입학이 가능했던지라 지인들의 주소지에 전입신고 후 등하교 시간이 서너 시간 걸리는 엄마들이 많았다. 좋은 환경을 찾아 이사 다녔던 그 옛날 맹모삼천지교가 아니라 주변에 특수학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새벽 등굣길에 올라 아이 하교 시간까지 학교 주위를 배회하던 엄마들의 삶이 어땠을지 나도 그랬기에 잘 안다.
서울 강남구의 밀알학교와 송파구 육영학교는 정서장애 학교로 분류되었다. 정서장애라는 말이 낯설었다. 장애라는 단어가 비수가 되어 꽂히기 시작했다. 비교적 신체는 건강하지만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강동구의 구화학교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모였고 주몽학교는 지체부자유 학생들이 공부하도록 만든 학교였다. 하지만 발달장애(자폐와 지적장애)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특수학교는 본연의 설립 목적과 달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 근처에 특수학교가 없는 경우 몸이 불편한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새벽밥을 먹어야 했고 통학의 어려움에 큰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서울 강서구의 공진학교 부지에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예정되었는데 국회의원이 나서서 한방병원을 약속하며 주민들을 선동했다. 반대하는 주민들과 장애부모들 사이의 지난한 싸움은 정치인의 드센 가세로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엄마들이 무릎 꿇고 주민들에게 호소했고 교육감은 한방병원이 가공의 희망이라 일축하면서 여론은 특수학교 설립에 힘을 모아주었다. 그런 과정이 ‘학교 가는 길’이라는 영화와 책으로 만들어져 세상은 이제 함께 사는 곳으로 자리 잡는 줄 알았다. 중랑구는 장소를 아홉 번이나 옮기면서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공사에 들어갔고 서초구는 다행히 나래학교가 개교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공고 폐교 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계획이 또다시 주민들의 반발과 맞서게 되었다. 학교 부지에 학교를 다시 세우는 것에 나는 왜 주민설명회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인정해서 그러는 거 아닌가. 주민들은 특수학교 대신 일반 고등학교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숲에다 지으라는 반대 목소리는 님비현상이다. 집값 하락을 염려하고 있는 그들의 속내는 성동구를 명품 동네로 만들고 싶다는 더러운 욕망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경험해 온 바로는 처음 정해진 학교 부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결국 개교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갈팡질팡하게 된다. 여기서 밀리면 저기서도 밀려 끝내 특수학교는 세워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처음 지정된 장소가 중요하다. 이미 완료된 계획을 뒤집으려는 주민들의 모습은 8년 전 공진학교 때와 다르지 않다. 그나마 아직 정치인의 개입이 없으니 좀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오래전 나는 아들의 초등 입학을 일반학교와 특수학교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했다. 좋은 담임 만나면 아이의 발달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일반학교를 택했다. 2년 반을 견디다가 결국 특수학교로 전학했다. 그 당시 특수학교가 없었다면 일반학교에서 받는 아들의 스트레스와 그걸 바라봐야만 했던 나는 어땠을까? 통합이 답이긴 하지만 방치 수준인 상황에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교사와 급우들이 최선을 다한다 해도 아들이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서로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장애인과 섞인 경험 있는 아이들은 커가면서 장애인을 대하는 게 달랐다. 그러려니 하며 이해해 주는 경우가 있었기에 통합은 장애 비장애를 떠나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제공하는 셈이다.
전학 후 아들은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편했는지 울음떼가 줄면서 조금씩 차분해졌다. 처음부터 특수학교에 보냈다면 더 나았을 걸 후회도 했지만 그랬다면 또 일반학교를 좀 다니게 해 볼 걸 하며 후회했을 것이다. 그나마 필요할 때 집 근처에 특수학교가 있어서 나와 아들에겐 행운이었다.
일반학교의 통합 상황이 제대로만 된다면 특수학교는 필요 없을 것이다. 대찬 장애부모는 그것을 개인의 힘으로 가능한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한 개인과 교사에게 모든 걸 맡길 순 없으니 특수학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 기존 일반학교의 폐교가 자주 등장한다. 불확실한 미래의 고등학생을 위한 학교보다 지금 당장 학교가 필요한 장애학생들이 가야 할 특수학교를 짓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집값 떨어진다는 속내를 숨기고 특수학교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단 한번만이라도 내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면 어땠을지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달라고.
특수학교 버스를 20년 전 택시기사처럼 오해하는 이는 없겠지만 달라지지 않는 시민 의식에 장애 자녀 둔 부모들의 마음은 매일이 지옥인 건 우리만 알고 있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3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