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사조, 비상하다' 포스터.ⓒ 네이버영화
 영화 '불사조, 비상하다' 포스터.ⓒ 네이버영화

【에이블뉴스 박선희 칼럼니스트】19살, 엘리 콜은 세 살 때 무릎 뒤에서 발견된 혹이 희귀 종양으로 밝혀져 수술을 했다.  항암치료도 받았지만, 오히려 몸에 더 나쁜 영향을 주었다. 종양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효과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는 망설였다. 장애인이 되면 아이가 달라질까 봐. 그러나 엘리가 살기 위해선 한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잘라야 했다. 한쪽 다리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수영장이었다. 그때부터 엘리는 누구보다 빠르기 위해 노력했다.

바스티스는 부룬디 내전의 생존자다.  시간이 흘렀어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아이가 겪어선 안 될 전쟁이었다. 후투족이 투치족을 몰살하려 일으킨 내전은, 어린아이까지 없애 후손을 끊으려 한 전쟁이었다.    당시 세 살이던 바스티스는 엄마를 따라 도망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다리를 잘리고 목 뒤와 허리를 칼에 찔렸지만 살아남았다. 엄마가 살해되는 걸 눈앞에서 봐야만 했다. 치료 후 보육원에서 지내다 현재의 부모님에게 입양되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법을 일찍 깨달은 아이였다. 그가 멀리뛰기를 고른 건, 달아나고 싶어서였다.

맷은 두 팔이 없이 태어났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맷도 보육원에 보내졌는데, 그를 입양한 부모님에게는 이미 세 아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맷을 품었다. 아버지는 늘 말했다.

“할 수 있잖아. 해봐.”

팔이 없다고 못하겠다고 칭얼대도 통하지 않았다. 그 뒤로 그는 모든 걸 발로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림도, 독서도, 밥 먹는 것도 아주 잘하는 아이로 자랐다. 어떤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맷은 황소도 타고 나무에도 올랐다. 자라면서는 온갖 다이내믹한 운동을 섭렵했다. 발로 하는 운전도 10대 중 9대를 이길 만큼 실력자가 되었다. 그의 두 발로 선택한 종목은 양궁이었다. 어깨와 얼굴로 활대를 유지하고 발가락으로 활시위를 당긴다. 10점 만점에 10점.

양궁 이미지. ⓒ픽사베이
  양궁 이미지. ⓒ픽사베이

 한 선수는 다섯 살에 펜싱에 빠져 국내에서도 6년 연속 우승하던 꼬마 선수였다. 그런데 11살 때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당시로선 걸리면 97%가 사망하는 수막염이었다. 며칠의 혼수상태 후에도 병세는 나아지지 않아 처음에는 팔을 잘랐다. 팔만 절단하면 완치될 거라 했지만 얼마 후 병이 재발했다. 이번에는 다리를 절단해야 살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다시 재발로 다른 쪽 다리도 잃었다.

이들의 사연만 들으면 불행이라는 단어만 떠오른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자였다.  그들은 불행의 지점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모두 이 다큐영화의 주인공이자 패럴림픽의 영웅들이다.

경기장 이미지. ⓒ픽사베이
 경기장 이미지. ⓒ픽사베이

루드비히 구트만은 독일 태생의 유대인 신경외과 의사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1944년 그는 영국 버킹엄셔주의 스토크맨드빌 병원에서 척수손상 환자 재활을 위한 국립척수손상센터를 설립하고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스포츠는 장애인의 재활과 자존 회복의 핵심 수단이다.”라는 신념 아래, 1948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당일 병원 정원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군인 16명을 대상으로 양궁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가 바로 현대 패럴림픽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1952년에는 네덜란드 팀이 참가해 국제대회로 발전했고, 1960년 로마에서 열린 대회를 제1회 공식 패럴림픽으로 본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상을 발전시키기 위해 출전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말처럼 들린다. 자신을 위해 패럴림픽에 참가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들의 용기로 이룬 세계는 인류에 큰 자긍심을 준다.

눈물과 땀방울로 이룬 그들의 경기 모습에서는 장엄함이 스며든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에 위안을 받게 된다.

영화는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담아 숭고한 아름다움을 예술사진처럼 보여준다. 100m 달리기 선수 피톡의 경기를 보여줄 때는, 현장을 그대로 담아 경기장에서 관람하듯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 다리는 살아 있는 다리, 또 한 다리는 강철 다리로 폐가 터질 듯 전력 질주하는 강인한 모습.

패럴림픽 이미지. ⓒ픽사베이
   패럴림픽 이미지. ⓒ픽사베이

플렉스 풋 치타(경기용 의족)들이 달리는 광경은 감동의 들판이다. 야생에서 치타들이 달리는 것처럼 생생한 활기를 내뿜는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들이다.하루하루 용기와 노력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경기용 의족의 이름인 플렉스 풋(Flex-Foot)은 의족의 한 종류다. 달리기나 걷기 같은 운동을 위해 개발된 고성능 의족으로,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이 자주 사용하는 장비다. 탄소섬유로 만들어져 매우 가볍고 탄성이 뛰어난 플렉스 풋은 미국의 밴 필립스가 1980년대 초에 개발했다.

그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후, 기존의 딱딱한 의족으로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탄성 있는 스프링형 발을 직접 고안했다. 이 발은 달릴 때 지면을 밟으면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다시 밀어주는 ‘스프링 효과’를 내어 실제 발의 움직임과 비슷한 추진력을 준다. 모양은 알파벳 C자 형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플렉스 풋 치타 모델을 사용해 패럴림픽에 출전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플렉스 풋은 단순한 제품명이 아니라, 탄성형 에너지 저장 의족을 대표하는 기술 브랜드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주 아시아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들이 모인 APEC 행사가 있었다. 많은 의견이 토론되고 수많은 협상이 오갔다.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 주최한 자리였기에 온 나라의 관심이 쏠렸고, 연일 화제로 들썩였다. APEC에서 흘러나오는 한 가지 한 가지 소식마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폐막식 날, 경주역 앞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집회가 있었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생활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이 소식은 한겨레신문 외에 국민일보, 영남일보 등 일부 지방신문에 한 꼭지로 보도되었다.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것도, 주요 행사장 한켠에서 벌이는 작은 집회도 모두 세상을 위한 한걸음이다.  소외받고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일은 이 작은 한걸음에서 시작한다.  더불어 패럴림픽은 앞으로 쭉 본방 사수다. 나의 최애 선수도 만들고, 팬클럽도 만들어야지.

영화정보

2020년 영국 제작 

감독: 이안 보노트                                                                                                                           

출연진: 페럴림픽 선수들

영화보기:  넷플릭스


※기사원문-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 idxno=225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