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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기고-트럼프의 자폐증 발언이 심각하고 위험한 이유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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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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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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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상담가
동료상담가

[기고]트럼프의 자폐증 발언이 심각하고 위험한 이유

이정훈 애큐메니안 편집장은 과학이 부정한 백신-자폐 음모론을 반복하며 자폐를 ‘치료’ 대상으로 병리화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는 장애와 소수자를 문제화해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혐오를 동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파시즘적 통치 전략으로, 민주주의와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직격했다.
▲이정훈 애큐메니안 편집장은 과학이 부정한 백신-자폐 음모론을 반복하며 자폐를 ‘치료’ 대상으로 병리화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는 장애와 소수자를 문제화해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혐오를 동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파시즘적 통치 전략으로, 민주주의와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직격했다. @ NEWSNATION 갈무리
  • 단순한 무지를 넘어, 장애인과 소수자를 배제하는 극우의 통치 전략

[더인디고] 도널드 트럼프는 유세장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외친다. 그는 “백신을 맞고 두 주 뒤, 아이가 자폐증에 걸렸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과학계가 수십 년 동안 부정해온 ‘백신-자폐’ 음모론을 그는 집요하게 소환하며, 자폐증을 마치 치료해야 할 병처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트럼프의 언어에는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적 존재로 낙인찍는 극우 정치인의 전형적 통치 전략이 담겨 있다.

과학은 이미 분명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유전적 요인이 60~90%에 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타이레놀이나 백신 같은 외부 요인으로 ASD를 설명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며, 과학적 근거가 극히 빈약한 선동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자폐증을 병리적 범주에 가두고, 외부 요인에 따른 결과이니 교정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퍼뜨린다. 이는 단순한 발언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개인과 가족에게 희망 고문을 가하고, 끝내 사회적 차별과 편견 속에 영원히 가두려는 정치적 폭력(political violence)이다. 존재 자체를 ‘문제’로 규정하는 것만큼 잔인한 폭력은 없다.

장애는 병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다. 이는 20세기 후반 장애학이 확립한 기본 명제이자, 장애인 당사자들이 오랫동안 외쳐온 권리 선언이다. 장애를 개인의 손상으로만 보는 의학적 모델(medical model)은 이미 오래전에 폐기된 사고방식이다. 오늘날 장애학은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을 통해 제도와 구조의 차별을 문제 삼는다. 휠체어 이용자가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의 신체 때문이 아니라, 경사로를 만들지 않은 사회 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자명한 사실을 교묘히 회피한다. 그는 장애인을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호명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구원자인 양 행세한다.

나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이러한 언어가 얼마나 깊이 영혼을 파괴하는지 절실히 안다. 장애를 ‘병’으로 치부하는 순간, 사회는 우리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고쳐야 할 결함’으로 바라본다. 그 차가운 시선 속에서 인간의 권리와 존엄,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지위는 무너져 내린다. “도와줄게요”, “극복할 수 있어요”와 같은 동정어린 말들조차, 우리의 존재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낙인이 된다. 그렇기에 트럼프의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당사자의 삶을 훼손하는 언어적 폭력(linguistic violence)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병리화(pathologization) 전략이 그의 정치 전반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는 장애인을 ‘치료 대상’으로 호명하듯, 이민자를 ‘질병을 옮기는 해충’으로, 반대자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자’로 병리화한다. 소수자 집단 전체를 문제화한 뒤, 자신만이 그것을 해결할 유일한 지도자인 양 군림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다양성을 말살하고, 혐오를 동력으로 삼아 권력을 유지하는 파시즘적 통치술의 전형이다.

장애는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다. 다양한 몸과 목소리가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구조적 과제다. 트럼프가 이 사실을 모른 척하며 자기 정치에 이용하는 한, 그는 결코 미래를 향한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차별과 배제의 과거로 회귀하려는 극우 정치인의 상징일 뿐이다.

장애인을 병리화하는 정치인은 단지 장애인만을 해치지 않는다. 그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바다 건너 미국의 극우 정치가 한국 사회에까지 파장을 미치는 지금, 우리는 분명히 명명해야 한다. 장애인을 병리화하는 정치인, 바로 그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다.


※기사원문-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archives/64521)